나는 에티오피아련방민주공화국 국경절 11돐에 즈음하여 당신과 당신을 통하여 귀국 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나라의 번영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과 아울러 우리 두 나라사이의 친선협조관계가 계속 확대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합니다.
미제침략자들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우리 민족을 멸살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미 알려 진바와 같이 미군은 수십만개의 폭탄과 포탄을 퍼부어 무고한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고 중세기적방법으로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머리에 대못을 박아 죽이였는가 하면 지어는 세균무기와 화학무기까지도 꺼리낌 없이 사용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미군이 조선전쟁에서 세균무기와 화학무기를 사용한것은 오랜 기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실전에 적용한것으로서 국제법규에 대한 란폭한 유린은 물론 우리 민족멸살을 노린 고의적인 범죄행위이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군이 저지른 세균전과 화학무기사용에 대한 범죄적사실을 재조사확증하고 그 자료의 일부를 묶어 공개한다.
1.미군의 세균전만행
조선전쟁시기 인민군대에 의하여 패배를 거듭하게 되자 미군은 저들의 수치스러운 참패를 만회해 보려고 세균무기사용을 서슴지 않았다.
미군은 1950년 가을 미합동참모본부에서 이미전부터 준비하여 온 세균무기를 실전에 대대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계획을 정식으로 작성비준하고 시험적단계와 그를 본격화하는 작전단계로 나누어 세균전을 계단식으로 확대해 나갔다.
미군이 이처럼 조선전쟁을 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세균무기를 사용한 목적은 전 전선에서 거듭되는 군사적참패를 만회하고 실전을 통해 세균무기를 더욱 연구완성하자는데 있었으며 동시에 그 효과성을 검증하고 세균전경험자들을 더 많이 길러 내자는데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 전 기간 우리 나라는 미제의 세균전의 마당으로,그 첫 시험장으로 되였다.
미군은 1950년 12월 초 공화국북반부의 일시적강점지역에서 쫓겨 가면서 평양시,평안남북도,강원도,함경남도,황해남북도 등 여러 지역들에 천연두를 비롯한 수많은 전염병균들을 음흉한 방법으로 전파시키였다.
미군은 1950년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평양시에서,1950년 12월 1일부터 2일까지 평안남도 양덕군과 함경남도 고원군에서,1950년 12월 7일부터 8일까지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교활한 방법으로 전염병균을 퍼뜨리였다.
미군은 <가택수색>을 구실로 인민들을 강제로 집에서 몰아 내고는 천연두균에 오염된 헌 옷가지들과 어린이놀이감들을 집안에 마구 널어 놓았다.
이리하여 미군이 쫓겨 간 때로부터 7∼8일간의 잠복기가 지난 천연두가 12월 중순에 이르러 35개 지역들에서 동시에 발생하였다.
미제야수들이 퍼뜨린 세균들에 의한 전염병은 1950년 12월 중순부터 1951년 1월까지 미군이 쫓겨 난 평양시,평안남북도,강원도,황해남북도 등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였으며 발병건수는 급격히 증가되여 1951년 4월에 이르러서는 3,500건 이상에 달하였다.
특히 미군의 일시적강점으로부터 해방된 강원도에서 1,126건,함경남도에서 817건,황해남북도에서 602건으로서 가장 심하게 천연두가 만연되였는데 발병자중 10프로가 죽었다.
미군은 또한 이 시기 천연두와 함께 류행성출혈열병원체도 마구 뿌리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재진격에 의하여 패배를 거듭한 미군은 서울이남 37도선까지 쫓겨 가게 되자 인민군대의 진격을 막아 보려고 발악하면서 38도선 중부이남지방과 서울이북사이에 류행성출혈열병원체를 뿌리여 이 지역에 살던 수많은 주민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후 전선이 38도선에서 고착된것으로 하여 류행성출혈열병원체의 피해를 오히려 제놈들자신이 입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였다.이것은 응당한 징벌이였다.
당시 적들이 극히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미군이 이 병에 걸려 2,100여명이나 쓰러졌다고 한다.
이것이 미제가 전파한 류행성출혈열병원체에 의해 미군자신이 벼락을 맞게 되여 당시 세계적물의를 일으킨 유명한 <손오열사건>이였다.
미군은 또한 무질서하게 패주하면서 미군과 남조선괴뢰군안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한 매개성티브스환자들을 격리시킬대신 의도적으로 제놈들이 지나가는 길가주변 집들에 마구 들이 밀어 주민들속에 발진티브스와 재귀열을 대대적으로 퍼뜨리였다.
미군은 평화적주민들뿐아니라 거제도와 태평양상의 여러 섬들에 인민군전쟁포로들을 가두어 넣고 세균무기 시험대상으로 삼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륙하는 야수적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51년 3월 <유엔군총사령부>의 <위생복리처장> 젬스준장이 인솔하는 제1091호 세균살륙정은 비밀리에 동해안 원산앞바다와 거제도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으면서 인민군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 3,000여회의 세균무기<실험>을 감행하였다.그 결과 1,400명은 중병에 걸렸고 나머지 포로들중 80프로는 원인모를 여러가지 병에 걸려 애처롭게 신음하다가 죽었다.
미군은 또한 제14호<야전병원>으로 가장된 수용소안에서 적리(붉은 배앓이)균을 퍼뜨려 1950년 11월 23일 단 하루동안에만도 91명을 죽이였으며 제4호 수용소안에서는 7개월간이나 세균무기로 무려 2,000명이상의 포로들을 죽이였다.
한편 미군은 지상화학부대에 의한 세균산포와 함께 은밀한 방법으로 <B-26>,<B-29>형의 비행기로 세균탄을 떨구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미군은 세균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11월 군산공군기지에 있던 미제3폭격기련대와 일본 오끼나와에 기지를 두고 있은 미극동공군사령부직속 제19폭격기련대를 동원하여 조선의 서북부(청천강이북-압록강남안지대)와 양덕,함흥,원산에 첫 세균탄을 떨군데 뒤이어 1952년에 이르러서는 국부적인 단계로부터 전면적인 단계에로 이행하여 지역에 관계없이 대대적으로 세균탄을 투하하였다.
미군은 세균전을 정규작전으로 벌릴데 대한 상전의 명령에 따라 1952년 1월부터 3월까지 질병의 만연성정도,세균무기와 용기의 종류별상태,운반수단으로서의 비행기의 종류별 적합성,각이한 지대에 대한 세균무기의 사용효과,투하하는 방법 등 세균전을 련마하려는 목적으로부터 공화국북반부의 서북부와 중요 수송로,후방의 중요철도간선,분기점들과 그 주변의 주민지대에 매월 평균 10여차이상 세균탄을 계획적으로 떨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부터 페스트,콜레라 등 전염병을 전파하는 많은 량의 각종 독충들을 비행기로 실어다 공화국북반부 전 지역에 련속 산포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 강원도 평강군에,2월 11일 철원군에,17일 평강군에,18일 평안남도 안주시에,23일 평원군에,25일 강원도 문천시에,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27일 평양시 강동군과 평안남도 순천시에,29일 황해북도 수안군에 파리와 모기,거미를 비롯한 전염병균을 가진 각종 독충들을 대량적으로 뿌리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2년 1월과 2월에 이어 3월 1일에는 평안북도 철산군과 평안남도 양덕군에,2일과 4일에는 함경남도 고원군과 평양시 중구역에 파리,벼룩 기타 곤충들을 뿌린것을 비롯하여 거의 매일과 같이 독충들을 산포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전면적인 세균전을 벌리기 시작한 1952년 1월 초순부터 3월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169개 지역에 연 804차에 걸쳐 독충들과 균이 묻은 여러가지 물건들을 떨구었을뿐아니라 중국동북지방의 광범한 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균탄을 떨구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당시 조선에 파견되였던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이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거나 체험자들에게서 청취한 증언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지적되여 있다.
1952년 1월 30일 조사단은 강원도 이천 동남지역에서 파리,빈대,거미가 눈우와 돌사이를 기여 다니는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불 태워 버렸다.그를 구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파리들은 콜레라균에 감염되여 있었다.
1952년 2월 18일 조사단은 평안남도 안주군 대니면 발남리(당시)에서 파리,거미,딱정벌레들을 발견하였는데 추위속에서도 그것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파리는 조선파리와는 달리 긴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몸집은 크고 머리는 조선파리보다 비교적 큰 편이였다.
거미는 종래의것은 큰것과 작은것 두 종류로서 색갈은 검은것이였으나 발견된 거미는 그 크기가 중간쯤 되였으며 몸빛은 조금 희였다.
딱정벌레역시 종래의것은 몸집이 둥글고 약간 누른빛인데 발견된것은 몸집이 납작하였으며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지방에서는 계절적으로 이때에 파리와 거미를 본 일이 전혀 없었다.
곤충들이 발견되기 전날 야밤에 미군비행기들이 이 지역 상공에 낮추 떠 수차례 선회하였으나 폭격 또는 소이탄을 떨구거나 기총사격을 한적이 없었다.
조사결과 이 곤충들은 페스트균에 감염되여 있었다는것이 확증되였다.
1주일이 지나 이 부락에서는 50명의 페스트환자가 발생하였는데 3월 11일까지 약 600명의 부락인구중에서 36명이나 사망하였다.
1952년 2월 22일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양동리(당시)와 사인면(당시)에서는 얼음과 눈우에서 보통파리보다 머리가 작고 날개가 길며 몸에 털이 많은 파리들이 발견되였다.
평안남도 개천군(당시)에서는 2월 25일 이후 파리와 기타 곤충들이 9차례나 발견되였는데 그것 역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곤충들이였다.
이 군에서는 4월전에 파리가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2월 26일 개천군 북면(당시)에서는 누런 종이에 싼 곤충이 눈 녹은 습지우에 뭉쳐 있었고 2월 28일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송오리(당시)부근에서 개미같은 곤충들이 발견되였는데 직경이 약 30센치가량의 몇개의 무리로 되여 있었으며 각 무리의 간격은 약 3메터∼5메터였다.
다음날 그것들은 이미 800메터의 거리에까지 흩어 져 있었다.
곤충들이 발견되기 전날에 5대의 미군비행기들이 반시간동안 그 장소우로 선회하였으나 역시 폭탄이나 소이탄을 투하하지 않았고 기총사격도 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그 곤충들은 장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에 감염되여 있었다는것이 판명되였다.
3월 3일과 4일에 평안남도 순천군의 자산면 고읍리(당시)와 순천면 마상리(당시)에서는 이상한 모양의 파리들이 약 1평방야드(1평방야드는 대략 0.836평방메터)가량의 면적우에 뭉쳐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파리들은 령하 10도씨이하의 눈우에 있었으나 살아 있었다.
파리의 머리는 조선파리보다 작고 날개는 서로 붙어 있었으며 몸집은 보통파리보다 길었다.
이 지역에서는 보통 이 계절에 집밖에서 파리들이 살고 있는것을 볼수가 없었다.
이날 안주부근에서는 모기들이 무데기로 발견되였는데 보통모기들은 머리로부터 몸까지 약간의 털이 가볍게 덮여 있는데 발견된 모기들은 털이 훨씬 더 많았다.
1952년 3월 5일 평양시 중구 남문리(당시) 길우에서는 파리들이 크고 작은 무리로 발견되였는데 그 다음날 이 거리에서 콜레라가 발생하였다.
3월 11일 벽동군에 있는 전쟁포로수용소로부터 몇키로메터 떨어 져 있는 곳에서도 파리와 기타 곤충들이 눈우에 떨어 져 서로 뭉쳐 있는것이 발견되였다.
조사단이 콜레라환자를 처음 진단한것은 1952년 2월 20일이였다.
환자는 강원도 철원군 북면(당시)에 사는 김학문(40살)이라는 사람이였는데 그는 2월 23일에 사망하였다.
같은 마을에서 3월 5일 두사람이 역시 병 들어 누웠는데 그 다음날 두사람 다 사망하였다.
3월 8일에 3명이 더 앓아 누웠고 그중 한 사람은 그날로 죽고 나머지는 3월 9일에 죽었다.
평양시에서는 3월 6일에 2명이 병들어 눕고 또 한 사람은 3월 8일에 병들어 누웠다.그중 2명이 3월 8일에 죽었다.
황해도(당시)에서는 곤충이 발견된것이 36건인데 수안군 수구면 석달리(당시)에서 3월 8일에 콜레라로 2명이 병들어 누웠는데 그중 한 사람은 3월 9일에 죽었다. 이 지역에서 콜레라발병자수는 13명인데 그중 9명이 죽었다.
페스트환자를 처음으로 진단한것은 2월 25일인데 이 환자는 안주군 대니면 발남리(당시)에 사는 29살나는 황리채였으며 2월 29일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26살나는 박순옥이가 이 병에 걸렸다.
조사단이 현장에서 조사확증한 이상의 자료들은 실재한 사실들중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피해장소들을 조사단이 다 돌아 볼수 없었기때문이다.
공화국북반부에는 적어도 전쟁전 4년동안에 이러한 전염병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었다.
미군의 이러한 야수적만행은 우리 인민의 끓어 오르는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앞에서 세균산포전은 여지 없이 부서 지고 세계인민들의 저주와 규탄을 면치 못하였다.
미군은 우리 인민의 영웅적인 반세균전투쟁에 의하여 저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되자 1952년 4월부터 감염지대를 설정하여 반복오염시키는 방법으로 세균전의 범위를 넓히고 그 효과를 높이려고 더욱더 미쳐 날뛰였다.
미군은 1952년 5월부터 세균전대상을 3개의 방향 즉 공화국북반부를 횡단하는 2개의 오염지대와 서해안지대,동해안 지대로 설정하고 7일∼10일 간격으로 집중적으로 재오염시키기 위한 작전을 대규모적으로 감행하였으며 1952년 11월부터는 선행세균작전의 실패를 만회해 보려고 후방의 중요군사적요충지대와 교통중심지들을 오염시키며 아군의 수송로를 차단해 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다.
미군은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9개의 비행련대를 동원하여 신안주주변에 대한 집중적인 세균공격을 기도하면서 매일 대규모적인 폭격과 함께 세균탄을 쏟아 붓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의 이 범죄적인 세균전에는 일본 오끼나와에 기지를 둔 폭격기들은 물론 남조선에 기여든 미공군 제3,제17경폭격기련대,제4,제51전투추격기련대,제8,제18,제49,제58,제474전투폭격기련대,해군륙전대 제1공군련대의 <B-29>,<B-26>폭격기들과 <F-51>,<F-80>,<F-84>,<F-86> 전투폭격기들,해군륙전대의 야간전투기들 등 공화국북반부지역의 폭격에 동원된 비행기의 4분의 1이 망라되였으며 어떤 날에는 하루에 무려 480대까지 출격하여 세균탄을 떨구었다.
미군이 세균전에 동원시킨 비행기대수들과 실지로 세균탄을 뿌린 지역들을 보면 세계전쟁사에 있어 보지 못한 최대규모의 범죄적인 첫 세균전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미군은 또한 세균무기를 더욱 광범히 적용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군은 세균무기 적용수단으로 세균폭탄,세균산포탕크,세균포탄,종이탄(종이를 여러겹 압착하여 만든 폭탄),원통형의 나무함 등을 리용하였으며 세균폭탄으로서는 500lb(폰트)(1lb는 대략 0.454키로그람)폭탄형세균탄,1,000lb폭탄형세균탄,락하산형 세균탄,기름상자형의 세균탄 등을 사용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2년 1월 22일 밤 황해북도 봉산군에 날아 들어 군내 여러 지구에 폭발되지 않은 폭탄을 떨구었는데 여기에서 나온 수천수만마리의 파리,거미,진드기 등 곤충들의 전부가 콜레라,페스트,파라티브스,적리균에 감염되여 있었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2년 2월 26일과 28일에는 강원도 련천군에 연막탄과 함께 류탄포를 발사하여 페스트,콜레라,티브스에 감염된 세균독충을 산포하였다.
1952년 2월 11일 미제공중비적들은 강원도 철원군에 락하산이 달린 원추형종이탄과 립방형종이탄을 떨구었으며 1952년 3월 26일 평안남도 강동군(당시)에,3월 5일 함경남도 금야군에,1952년 2월 27일과 3월 7일에는 평안남도 성천군에,2월 28일과 3월 5일,6일,6월 6일에는 평안남도 중화군(당시),평양시,함경남도 금야군,평안북도 벽동군을 비롯한 여러 지역들에 각종 형태의 종이봉지에 독충을 넣어 떨구는 귀축 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2년 3월 7일 자강도 강계시를 비롯한 많은 지역들에 세균에 오염된 쥐,벼룩,모기를 비롯한 각종 독충들을 원추형 또는 사각형의 나무함에 넣어 뿌리였다.
미군은 전염성병균을 리용하는데서도 감염경로가 각이하고 감염성과 치사률이 높으며 저항성이 강하고 잠복기가 다른 세균들을 선택하여 세균전만행을 최대한 은페하고 전염속도를 높임으로써 우리 인민에 대한 대량살륙을 기도하였다.
미군이 리용한 세균무기의 종류로서는 악성,급성,전염성세균들인 페스트,콜레라,천연두,류행성출혈열을 비롯하여 비타저,장티브스,파라티브스(A,B),적리,발진티브스,살모넬라,파스투렐라,물토치다,콩의 자반병,식물의 탄저병,륜문병의 병원체 등 20여종에 달하고 세균에 감염시켜 떨어 뜨린 곤충과 동물들로서는 파리(5종),모기(3종),벼룩,빈대,쥐를 비롯하여 무려 34종이상에 달하였다.
이처럼 미군의 야수적이고 전면적인 세균전은 공화국북반부의 전 지역을 포괄하는 작전범위와 규모가 방대한 계획적이며 집중적인 세균공세로서 전쟁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범죄였으며 세균무기의 적용수단과 방법의 다양성,악랄성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대인간살륙전,조선민족말살전이였다.
2.화학무기사용만행
조선전쟁시기 미군의 야수적만행가운데서 가장 범죄적인 죄행의 하나는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수많은 인민들을 대량적으로 살륙한것이다.
미제살인마들은 공인된 국제법과 인간의 초보적량심마저 다 줴버리고 가장 야만적인 화학무기를 세균무기사용과 때를 같이 하여 사용하는 천추에 용서 못할 범죄를 저질렀다.
미군은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 우리 나라의 강원도,황해남북도,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24개 시,군과 전선지구들에 수많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의 세균 및 화학무기 피해정형을 현지에서 조사하였던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미군비행기는 많은 경우에 질식성 및 기타의 독가스 또는 화학무기들을 사용하였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 있다.
남포시인민위원회 보건과장이 본 조사단에 제공한 증빙서류에 의하면 1951년 5월 6일 오후 5시 5분부터 6시 30분까지 이 도시는 네차례의 폭격을 당하였다.이 폭격이 있었을 때 날씨는 좋았고 온도는 23도씨였는데 13개소가 폭격을 받았다.마지막 공습때 주민들은 모두 대피하였다.이때 미제침략군 폭격기 <B-29>3대가 당시의 삼화리,후포리,축동리,룡정리,룡수리의 일부 즉 그 면적으로 보아 0.3평방키로메터 되는 지역을 가스탄으로 폭격하였다.그 결과 1,379명의 사상자를 내였다.그중 480명은 질식으로 사망하고 647명은 가스로 중독되였다.또한 이 공습으로 76명이 피살되고 176명이 부상 당하였다.
본 조사단이 청취한 목격자의 증언과 전문가의 증언 그리고 조사단에 제출된 물질적 및 문서상 증거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증되였다.
가스는 폭탄의 폭발후 즉시로 퍼졌으며 시초에는 검은색으로,다음에는 황록색으로,그것이 다시 황색으로 변하였으며 나중에 무색으로 되였다.
이 가스연기는 염소의 냄새와 비슷한 불쾌한 냄새를 냈으며 그 독성은 이 연기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되였는데 그 시간은 약 2시간이였다.
대피호안에 있던 사람들(그중에 아이들이 많았다)이 중독이 심하였으며 희생자의 증후는 다음과 같았다.
호흡이 곤난하여 지고 음성은 거칠어 졌으며 현기증이 나고 기침을 하고 눈물이 나고 코물이 흐르고 두통이 심하였으며 감각과 맥이 없어 지고 피부가 뜨거워 지고 구토증이 생기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고 피를 토하고 열이 나고 피부에 청색반점이 나타났으며 맥박이 약하여 지고 심한 기관지염 등이 생겼다.
혈액검사결과 백혈구와 적혈구가 증가되고 헤모글로빈이 15르로 증가되였다.
검진결과 페의 용량과 중량이 증대되여 륵골의 외면선에 닿았으며 분비물이 섞인 검붉은 액체가 세포조직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그리고 신장과 심장에는 혈액결핍의 징조가 보이고 모세관조직의 확대에 의하여 반점이 생기였으며 뇌막은 평평하여 지고 팽창하였으며 해부한 척수골 골수에는 충혈이 있었다.
본 조사단이 남포에 갔을 때 이상의 시체해부결과를 보았으며 가스탄공격을 받은 이 지역의 풀은 황갈색으로,동합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청록색으로,은가락지는 흑색으로 변하여 있었다.
1951년 7월 6일 오전 8시에 미국제트기 2대가 원산시 동북방향으로부터 서남방향인 풍포리의 상공을 비행하였다.
그때 기온은 27도씨였으며 가벼운 바람이 서북에서 불었고 공기는 비교적 습기를 띠고 있었으며 공중에는 구름이 없었다.
가스 혹은 어떠한 식별할수 없는 화학물질이 이 마을의 동쪽 약 200메터의 지점에서 100메터-200메터의 지역에 퍼졌다.
농민 안영화와 그의 안해 양춘옥 2명이 밭갈이하러 나가는 도중에 피부에 불이 붙는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고 호흡이 곤난해 졌으며 눈물이 나고 눈을 뜰수가 없었다.
조사단은 이 두 피해자가 1951년 7월 6일전까지는 건강하였다는것을 증명하였다.
이 비행기들이 지나간 직후 그들의 신체 로출부분(얼굴과 손발)이 근질거리였고 붉은점이 생겨서 그것이 콩알만하게 커지고 그 다음에는 부풀어 올라 그 내부가 화농했다.
이 상처는 어떤 내과병의 증후로써는 올수 없는것이며 2화상과 흡사하나 미란작용이 보다 심하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남자는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입원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녀자는 8월 20일까지 퇴원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입원하여 있는 동안 아연화연고를 바르고 난후 피부에 고름 혹은 물이 차 기포가 터지고 살가죽이 벗겨 졌다.
그러나 치료후에도 약간의 흔적은 남았다.
이 가스가 퍼진 곳에서는 농작물의 10프로,특히 콩잎에는 약 1센치의 사이를 두고 둥근 흰점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 피해자의 신체로출부분에서 발견된 붉은점과 흡사하였다.
목격자들은 폭탄폭발소리도 없었으며 기관총사격도 없었다고 증언하였다.
1951년 9월 1일 당시의 황해도 연백군 연성리와 당시의 장연군 원촌리에 2개의 폭탄이 투하되였다.
이 폭탄은 보통때와 다른 약한 소리를 내고 공중에서 터져서 검은 연기를 내였으며 그 다음에 황록색의 구름이 지면에 퍼졌다.그로하여 일반주민 4명이 사망되고 40명이 중독되였는데 그 결과는 1951년 5월 6일 남포폭격때에 발생된것과 류사하였다.
나무잎은 떨어 지고 지상의 곡식은 피해를 입었으며 놋그릇은 흑색으로 변했다.
미군의 악랄한 화학무기사용은 1952년도에 들어 서면서 전면적인 세균전과 때를 같이 하여 더욱 강화되였다.
미군은 평화적도시들은 물론 자그마한 농촌마을에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1952년 1월 9일 오후 4시경 원산 북쪽에 있는 학선리마을이 적비행기 2대의 습격을 받았다.
그때 구름은 없었고 기온이 5도씨정도 되였다.
이날 폭격후 83명이 중독되였는데 그 증후는 남포폭격때에 발견된것과 흡사하였다.
그 외에 목이 가려워 지고 입안에 단맛이 생기는것이 다를뿐이였다.
이 사실은 조사단이 질문한 의사와 기타 목격자에 의하여 확인되였으며 또 강원도인민위원회 보건부 부장이 제공한 자료와 원산중앙병원(당시)의 여러 의사들의 보고에 의하여 확증되였다.
이상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이 현지에서 조사확증한 자료들은 미제침략군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각종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기회에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것을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하여 주었다.
미군공중비적들은 1952년 5월 18일에는 평안남도 대동군에 독해물을 묻힌 조개를 떨구었으며 1952년 9월 평양시 형제산구역 신간 1동과 황해남도 연안지방에 주로 어두운 밤을 리용하여 독해물을 묻힌 가짜돈과 삐라를 뿌리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또한 1952년 2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의 기간에 33차에 걸쳐 독가스탄을 사용하였으며 거의 같은기간 미군지상부대들은 질식성 및 최루성가스탄을 41차에 걸쳐 우리의 방어진지에 발사하였다.
미군이 조선전쟁시기 사용한 대량살륙무기가운데서 스파나팜탄만 하여도 무려 1,500여만개에 달한다.
미군은 또한 전쟁포로대우에 관한 국제적협정을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우리측 포로들을 독해물<실험>대상으로 삼아 야수적으로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1952년 거제도 제76호 수용소와 룡초도수용소들을 비롯한 모든 수용소들에서 악랄한 방법으로 최루성독가스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독해물로 우리측 포로들에 대한 생체<실험>을 진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정신적불구자로 되게 하였다.
미군은 1952년 7월 7일 거제도수용소에서 <작업>에 동원시킨다는 구실밑에 우리측 포로 120명을 특별한 장치를 한 자동차 2대에 갈라 싣고 4시간동안 차에 감금한채 가스무기의 <실험>을 하여 그들 전부가 두달동안이나 눈을 뜨지 못하게 하였으며 나중에는 불구자로 만들었다.
1952년 8월 13일 룡초도 제2호 수용소에서 미군은 자그마한 철조망안에 인민군포로들을 가두어 넣고 1,000여개의 가스탄을 퍼부어 중독상태를 알아 보는 <실험>을 하였다.
놈들의 이 살인적인 <실험>으로 350명이상이 중한 화상을 입었고 44명이 의식을 상실하고 4명이 희생되였으며 3명이 청각을,6명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것은 사실상 실험이 아니라 야만적인 살인행위였다.
미군야수들은 1952년 6월 10일 거제도 제76호 수용소에서 27대의 땅크와 12문의 포를 리용하여 포로들에게 화학탄을 발사하는 귀축 같은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의 이 야수적인 살인만행으로 227명이 죽고 수많은 부상자가 났으며 1952년 9월 29일 거제도 제15호 수용소에서는 24명의 포로들을 군용차에 태운 다음 <실험>을 목적으로 5개의 화학수류탄을 던져 차에 탔던 인원 전부가 의식을 잃게 하였다.
미군은 1952년 12월 30일에는 비행기를 동원하여 거제도 제17호 수용소상공에 독가스를 뿌림으로써 포로전원을 눈병에 걸려 보지 못하는 불구자로 만든 다음 그들을 철저히 격리시키고 1주일에 두번씩 그 중독상태와 그 후과까지 조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군의 야수적인 화학무기사용만행은 1953년에 이르러 더욱더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1953년 2월 2일 거제도 제11호 수용소에서 미군은 인민군포로들에게 산포기를 리용하여 가스를 뿌려 의식을 잃게 하거나 부상을 입힌 후 <치료>해 준다는 구실밑에 병원에 끌고 가 6월 16일에 독가스의 반복중독으로 두 눈을 잃게 하였으며 역시 같은날 거제도 제13호 수용소에서도 독가스의 <실험>대상으로 끌려 간 포로들이 가스중독으로 시력을 잃었다.
1953년 3월 10일 미제살인귀들은 거제도 제15호 수용소에서 인민군포로들에게 화학수류탄을 던지거나 화학탄을 쏘아 가스작용시간을 측정하는 만행까지 감행하였다.
미군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감행한 생화학전은 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고 우리 조국강토를 무참히 파괴하기 위하여 저지른 고의적이고도 계획적인 범죄행위이다.
미군의 무분별한 생화학무기사용으로 수많은 우리 인민들이 무참히 목숨을 잃거나 불구자로 되였으며 아름다운 우리 조국강산이 심히 오염되고 생태환경이 엄중히 파괴되였다.
우리 민족은 조선인민에게 참을수 없는 고통과 불행의 재난을 들씌운 미제살인마들의 죄행을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 내고야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