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에서 <대통령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나라와 민족앞에 엄청난 죄를 지은 리회창이 자기의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정체를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 내고 있다.
리회창과 같은 역적이 <한나라당>의 이른바 <대통령후보>로 자처하며 권력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것은 남조선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조국통일을 위한 겨레의 지향과 념원에 대한 도전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외세에 추종하여 북남대결과 전쟁,민족분렬을 추구하는 극악한 특등친미사대매국노이며 반통일분자인 리회창의 죄악을 이에 고발한다.
리회창은 극악한 살인교형리이다.
그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 온다.
남조선의 어지러운 <법조계>에 발을 들여 놓은 때로부터 지난 30여년동안 그는 파쑈통치의 일선에서 정의와 민주를 악랄하게 교살하며 파쑈살인광으로서의 악명을 떨쳐 왔다.
그 시절 리회창은 자기의 포악성과 간악성을 그 무슨 <법대로>라는 허울 좋은 보자기로 감싸 왔다.
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는 법이다.
리회창은 1957년 <공군본부 법무관>으로부터 <서울형사지방법원 인천지원 판사>로,<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등 자리를 부단히 옮겨 가며 파쑈적기질을 키워 왔다.
그의 사람잡이 솜씨를 간파한 군부독재세력은 철부지에 불과한 리회창을 흡수하여 저들의 사냥개로 내 세웠다.
이에 대해 남조선 언론들은 <1961년 5.16군사쿠테타직후 혁명재판소가 구성되면서 1960년에 제대되여 곧바로 서울형사지방법원 인천지원 판사에 임명되였던 리회창이 1961년 7월 12일 혁명재판소 인사명령 제1호로 혁명재판소 2부 심판관에 임명.당년 25살,당시 수많은 법관중에서 25살의 초임법관인 리회창의 경우 어떻게 되여 군사정권의 혁명재판소에 참여하게 된것인지 알려 진바 없다.>고 까밝히고 있다.(남조선잡지 <말> 1997년 10월호)
일제통치시기 <검찰서기>로 수많은 독립운동자들을 잡아 가두고 처형하는데 앞장 섰던 친일역적인 애비 리홍규의 피를 이어 받은 리회창은 <법관>초년기부터 파쑈통치의 손발이 되여 무고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재판처형하였다.
남조선에서 최대의 언론말살사건으로 력사에 기록된 <민족일보>사장사형사건은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이다.
남조선언론이 <쿠테타세력이 만들어 낸 이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당시 32세의 청년사장 조용수는 사형선거를 받았는데 리회창후보는 배석판사로 참여한것으로 알려 져 있다.>(남조선잡지 <말> 1997년 8월호)고 폭로한바와 같이 당시 이른바 <혁명재판소> 심판관이던 리회창은 이 사건재판에 판사로 참가하여 사회의 민주화와 나라의 평화통일을 주장해 나섰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 대해 <북정권의 평화통일론을 보도,선동하여 반국가적행위를 했다.>(남조선잡지 <말> 1997년 10월호)는 모략과 날조로 일관된 <판결>을 내리여 그를 1961년 12월 21일 교수형에 처하게 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남조선의 <민족일보>관계자들과 <4월혁명회>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1998년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결성하고 학술토론회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진상규명을 요구해 나섰으며 2001년 12월 11일 학계,언론계의 주최로 열린 <민족일보 조용수사장 40주기 추념학술회의>에서 <사형판결에 참가한 리회창이 립장표명을 할것>을 공식 제기하였다.여기에서 남조선동국대학교의 한 교수는 <조용수발행인의 사형판결과 집행은 사법살인임이 명백한데도 재판부의 한 사람이였던 리회창이 어물쩍 넘어 가려는것은 용납할수 없는 일>이라고 단죄하였다.
군사파쑈<정권>에 기생하여 그의 적극적인 하수인,시녀노릇을 하던 리회창은 남조선에서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12.12숙군쿠테타>가 일어 나자 재빨리 새 상전의 품으로 기여 들었다.
광주인민봉기직후 <대법원 판사>자리에 기여 오른 리회창은 새 사회,새 제도,조국통일을 열망하며 투쟁에 일떠선 광주시민들을 땅크의 무한궤도로 짓뭉개버리고 피바다우에 솟아 난 군사독재<정권>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법>이라는 몽둥이로 가차없이 후려 갈겼다.
광주학살에 분노하고 파쑈<정권>을 비판한것 밖에 없는 <한울회>성원들에게 강제로 <죄>를 들씌워 처형한것도 다름 아닌 리회창이였다.
<5공정치범협의회>(1997년 당시) 공동대표 박재순은 <1차 대법원판결에서 강우영을 비롯한 4명의 대법관들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파기환송한 한울회사건에 대해 2차 대법원판결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리회창에 대해 이렇게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남조선잡지 <말> 1997년 8월호)
<리회창씨,당신의 량심과 지성에 걸고 말해 보시오.그때 당신은 정말 한울회나 아람회가 반국가단체라고 생각하고 유죄판결을 내렸습니까.아니면 전두환정권의 권력에 눌리워 자신의 출세와 안전을 위해 민주정신과 민족량심에 투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까.정말 당신은 법대로 재판을 했습니까.나는 오늘 력사와 민족앞에서 당신에게 묻습니다.그때 누가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였던가,우리인가,우리를 반국가단체로 처단한 당신인가.나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고문하고 사실을 외곡하면서 우리를 반국가사범으로 처단한 당신이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력사와 민족앞에 고발합니다.>
남조선의 정의와 량심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미국의 명령에 따라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쏜 공정대원들보다 군사불한당들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옹호한 자들의 죄가 몇백배로 더 크고 엄중하다고 성토하고 있다.
광주학살에 동원된 살인자들가운데는 그래도 량심의 가책을 받고 심한 정신적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그러나 <법>을 악용하여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조국통일을 요구하여 일떠선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 가혹하게 처형한 리회창은 량심의 가책과 괴로움을 받기는커녕 뻔뻔스럽게 머리를 쳐들고 <국무총리>니,<신한국당 대표>니,<한나라당 총재>니 하다가 나중에는 <대통령>감투까지 써 보려고 발광하고 있다.
남조선에서 반미열풍이 세차게 몰아 치고 있던 1982년 3월 18일 애국적청년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은 미국의 현지침략도구이며 사상문화적 침투거점의 하나인 부산 <미국문화원>을 불살라 버리는 과감한 투쟁을 벌리였다.
이것은 오랜 세월 미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억눌리고 짓밟혀 온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 맺힌 원한과 울분의 폭발이며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제침략자들에게 가한 응당한 징벌이였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 판사>랍시고 거들먹거리던 리회창은 이 사건을 자기의 사람잡이 솜씨를 보이고 미국에 환심을 살수 있는 더없는 기회로 여기며 미친듯이 기승을 부리였다.
그는 미제와 군부독재 <정권>의 손발이 되여 문부식과 김은숙을 이 방화사건의 <주동인물>로,김현장을 <배후조종자>로,남강원도 원주교구 교육원 원장 최기식신부를 이들을 숨겨 주었다는 <혐의>로 체포구속한것을 비롯하여 량심적인 종교인들과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잡아 들이고 그들에게 악명 높은 <보안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비롯한 극형을 선고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리회창의 사람잡이 솜씨는 그가 이른바 <대법관>으로 행세하던 때에 더욱 여실히 드러 났다.
그 시기 리회창은 <민족통일민주주의 로동자련맹사건>(1990년 4월),<혁명적로동자계급투쟁동맹사건>(1990년 8월),<조국통일촉진그룹사건>(1991년 3월),<민족해방활동가그룹사건>(1991년 6월),<사로맹인천위원회사건>(1991년 6월),<사회주의 로동자련맹사건>(1991년 9월) 등 수많은 <사건>들을 조작하고 죄 없는 애국자들과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재판처형하는 범죄행위를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이처럼 리회창은 지난 수십년동안 남조선에서 <법관>의 탈을 쓰고 정의와 애국을 짓밟고 민주를 교살해 온 살인광이다.
이런 놈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남조선은 피비린내 풍기던 지난 군사파쑈통치시기를 릉가하는 파쑈의 란무장으로,민주의 동토대로 되리라는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
리회창은 미국의 충견이며 부쉬의 북침전쟁마차를 끄는 마부이다.
1987년 9월 당시 <민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미국을 찾아 갔다가 외신기자들로부터 <당신은 남조선대통령후보이고 유권자도 남조선에 있는데 왜 미국에 왔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크게 망신한적이 있다.이 교훈에도 불구하고 리회창은 그 전철을 따라 강추위로 땅이 떵떵 얼어 드는 지난 1월 태평양을 건너 미국상전을 찾아 갔다.
미국의 힘을 빌어 <대통령꿈>을 실현해 보려는 어리석은 야망에서였다.
그때로 말하면 우리 공화국에 기어이 전쟁의 불소나기를 쏟아 부으려는 부쉬행정부의 북침전쟁광증이 절정에 이르고 있던 시기였다.
그는 미국땅에 들어 서기 바쁘게 <북의 병력을 비무장지대에서 후퇴>시키고 <북의 핵개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악담을 늘어 놓으면서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는 미국호전광들의 장단에 춤을 추며 돌아 쳤다.
뿐만아니라 리회창은 제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비무장지대에서의 <북의 병력을 후퇴배치>시키고 <재래식무기감축>과 <대량살상무기 개발중단>을 요구하겠다고 주제 넘게 떠벌이였다.이것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가증되고 있는 원인이 마치도 우리에게 있는듯이 사실을 오도해 보려는 서푼짜리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리회창이 미국에 기여 가 동족을 중상모독하는 이따위 망발을 마구 줴친것은 상전으로부터 <대통령>자리를 담보받기 위해서였다.
권력의 자리에 앉을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이것이 바로 리회창의 속심이였다.하기에 그는 미국행각시 미제침략군을 <전쟁억제력>으로 춰 올리면서 통일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세력균형의 조정자>로서 남조선강점 미군의 주둔은 계속 <필요하다>고 지껄여 대기까지 하였던것이다.
<미군 나가라!>는 반미열풍이 온 남녘땅을 휩쓸고 있는 때에 제땅을 계속 강점해 달라고 침략자의 발목을 그러안는것은 리성을 잃은 매국노들이나 할수 있는 짓이다.
부쉬패거리들은 제 나라,제 민족의 리익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남의 나라,미합중국의 리익만을 대변해 나서는 부실한 리회창이였으나 저들의 북침전쟁마차의 멍에를 메우기 위해 그의 몸값을 올려 주려고 애썼던것이다.
오죽하면 남조선인민들이 그의 미국행각과 관련하여 리회창을 나라와 민족을 팔아 <청와대입주권>을 구걸하는 <대통령증 중환자>로 락인하면서 <우리는 리회창의 로골적인 사대굴욕적외교행위를 보면서 그가 도대체 한국의 정치인인지,미국의 정치인인지 구분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였다.>,<이로써 리회창의 행각은 부쉬의 비위를 맞추면서 자신이 미국의 리익을 가장 잘 대변할수 있는 정치인임을 부각시켜 청와대 입주권을 따내기 위한데 목적이 있었다는것이 증명되였다.>고 단죄했겠는가.
리회창은 지난 2월 21일 상전인 부쉬가 남조선행각을 마치고 떠나기 바쁘게 그 무슨 총재단회의라는것을 열어 놓고 <북의 대량살상무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역스러운 나발을 불어 대기도 했다.
부쉬의 졸개로서의 리회창의 매국행위는 미군의 민간인학살만행을 대하는데서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은 당장 천백번 머리 숙여 우리 국민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학살자인 미군과 단 1분 1초도 같은 땅우에서 살수 없다.>면서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이 즉시 물러 갈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그런데 리회창은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사건을 비롯한 미군의 민간인학살만행과 관련하여 겨레의 편에 서서 미국에 사죄와 피해배상을 요구해 나설대신 도리여 <미국과의 우의적관계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느니,<미국의 신경>을 돋구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얼빠진 소리를 하면서 미국을 두둔해 나서고 있다.
한 재미교포언론인은 남조선잡지에 낸 글에서 리회창과 <한나라당>은 남북문제를 민족적관점에서 풀려는 의지도 안목도 없는 <정치인>,<정당>이라고 폭로하면서 리회창의 진짜 속심은 부쉬정권의 지원을 얻어 다음기 <대통령>자리를 노리는것이라고 신랄히 단죄하였다.
내외에서 일치하게 평하고 있는것처럼 리회창과 같은 매국역적이 <청와대>를 차지하게 된다면 남조선인민들은 자주권을 완전히 말살 당하고 미국의 노예로 더욱더 전락되고 말것이다.
리회창은 극악한 반통일분렬주의자이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의 발표는 온 겨레와 전 세계를 격동시킨 일대 사변이였다.
민족분렬 55년동안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력사의 순간이였고 그야말로 중대하고 의의 있는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우리 겨레는 분렬이래 처음으로 되는 북남수뇌분들의 상봉에 대환성을 올리며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쏟았었다.
그러나 민족적감정이란 꼬물만큼도 없는 리회창은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달가와 하지 않고 공동선언을 부정해 나섬으로써 반통일분자,역적으로서의 본색을 스스로 드러내 놓았다.
세계 수십억 인류가 북남수뇌분들의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는 력사적인 장면을 지켜 보며 환성을 터치고 있을 때 리회창은 보던 텔레비죤까지 꺼 버리고 돌아 앉는 망동을 부렸다.
얼마나 속이 뒤틀렸으면 이런 비렬한 추태까지 부렸겠는가.
원래 심술이 많고 속통이 바르지 않은 그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일정에 오른 첫날부터 <시기상조>요,북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 드는것이요 하는 당치 않은 나발을 불어 대며 반대해 나섰고 6.15공동선언이 채택되였을 때에는 누구에게 <굴복>하고 <리용>당하는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망발까지 마구 늘어 놓았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앞둔 2000년 5월 3일 리회창은 대표단에 야당측 인사들을 망라 시키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북남최고위급회담에 <정당대표가 참가하게 되면 북이 주장해 온 제 정당,사회단체 련석회의 등 통일전선정책의 일환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평양상봉 자체를 반대해 나섰다.(<제1라지오> 2000년 6월 1일)
그는 온 겨레의 최대의 관심과 기대속에 채택되고 민족의 대절찬을 받고 있는 6.15공동선언에 대해서까지 시비해 나서는 망동을 부리였다.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기본핵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려는 민족자주이다.그런데 리회창은 공동선언의 첫번째 조항에 대하여 <미군철수에로 이어 질수 있다.>느니,<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허물수 있다.>느니 하면서 걸고 들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 나가려는 겨레의 열망과 의지,민족의 리익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사대매국행위로서 용납할수 없는것이다.
그는 또한 <공동선언에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대한 언급이 한줄도 없는 점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의아해 하고 있다.>면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도 마치 공동선언을 부정하고 그에 불만이라도 있는듯이 사실을 외곡해 나섰다.(<제1라지오> 2000년 6월 19일)
리회창은 공동선언의 두번째 조항도 부정해 나섰다.내외에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에서 이룩한 중요한 성과가 북과 남이 분렬사상 처음으로 통일방도에 대해 합의를 이룩한것이라고 일치하게 평하고 있다.
그런데 리회창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통일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줴치면서 이를 정면에서 반대해 나섰다.(<제2라지오> 2000년 12월 12일)
그는 지난 5월 22일 <관훈클럽초청토론회>라는데 나타나 6.15공동선언의 두번째 조항을 또다시 시비해 나서면서 이 조항을 페기해야 한다고 지껄여 댔다.
다 아는바와 같이 6.15공동선언의 두번째 조항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민족의 공존공영과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인 통일방도로 된다.
이 조항을 페기하자는것은 결국 6.15공동선언자체를 부정하고 북과 남의 화해와 단합,공동번영과 평화적발전을 가로 막으려는 반통일적범죄가 아닐수 없다.
리회창과 그 패거리들은 우리의 초청에 의해 남조선의 정당,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이 조선로동당창건 5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되자 그에 대해 별의별 험담을 다 늘어 놓았다.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때에는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 지고 있다.>면서 축전개페막행사에 남측 대표들이 참가한데 대해 무슨 큰 변이라도 난것처럼 소란을 피웠을뿐아니라 남조선 동국대학교의 한 교수가 만경대를 방문하여 방문록에 자기의 평소의 뜻과 통일의지를 글로 남긴데 대해 <돌출행동>이니 뭐니 하고 걸고 들면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야단을 쳤다.
남조선 각지에서 부쉬행각을 반대하는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 지고 있던 지난 2월 리회창은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 금강산에서 하기로 된 북남민간단체들의 새해맞이 공동행사가 <부쉬맞이비난행사로 변질될것>이라고 부산을 피우면서 이를 파탄시키려고 각방으로 책동해 나섰다.
리회창은 북남사이의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퍼주기>라고 하면서 극구 반대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그 무슨 <년두기자회견>이라는데서 미국상전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받아 외우면서 <한나라당>과 자기는 <전략적상호주의,국민적합의와 투명성,검증>의 <3가지 원칙>을 지킬것이라고 력설하였다.
지난 3월에는 <한나라당>의 그 무슨 <대북기본로선>이라는데서 <평화보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북남사이의 <협력사업은 절대로 할수 없다.>는 이른바 <선평화,후교류협력의 원칙>이라는 얼 빠진 주장을 들고 나와 마치도 나라의 평화에 관심이라도 있는듯이 가장해 나섰다.
그러나 리회창패당이 아무리 발악해도 북과 남의 공존을 전면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추구하는 추악한 정체를 절대로 감출수 없다.
리회창의 반통일행위는 우리를 함부로 걸고 들면서 북남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하고 있는데서 여실히 드러 나고 있다.
리회창은 기회만 있으면 미친개처럼 동족을 물어 뜯으며 북남대결을 선동해 나서고 있다.
전쟁광 부쉬가 남조선을 행각하기 직전인 지난 1월 17일 리회창은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부쉬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은 잘하는것이라고 추어 올리고 동족인 북을 터무니없이 헐뜯었다.
오죽하였으면 리회창의 이런 태도를 두고 <한나라당>내에서까지 <부쉬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남북관계침체의 주요 원인이라는 국제사회의 정설을 굳이 외면하고 미국에서조차 비판 받는 대북강경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적자세>라고 비난하였다.
리회창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 막는 <주적>론과 <보안법>의 페기도 극력 반대해 나서고 있다.
리회창은 지난 5월 23일 어느 한 모임에 나타나 북과 남은 <상호대치관계와 평화교섭상대라는 2중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상대방에 대한 주적개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떠벌이였으며 전쟁론인 <주적>론을 계속 주장하면서 시대착오적인 <보안법>마저 페기하면 안된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온 민족이 그토록 바라는 화합과 통일의 앞길에 빗장을 지르려고 이처럼 피를 물고 날뛰는 리회창의 죄악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결코 용서 받을수 없는것이다.
리회창은 부정부패의 능수이며 인간추물이다.
우리 민족사에 치욕의 자욱을 남긴 력대 매국노들은 하나같이 륜리도 도덕도 모르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치사한 짓을 다해 온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이였다.
리회창도 바로 그런 놈이다.
리회창은 <법관>의 감투를 쓰고 이른바 <원칙>과 <청렴결백>을 운운해 왔다.그러나 그가 늘 입버릇처럼 외우던 <법대로>라는 면사포를 벗겨 보면 썩은 오물들이 가득 쌓여 구린내 나고 있다.그에게 <법>이라는 칼을 쥐여 준것은 도적고양이에게 고기창고를 맡긴 격이였다.
리회창은 돈이라면 오금을 못 쓰는 돈벌레이다.
이미 세상에 <안풍>사건으로 널리 알려 진 부정축재사건의 주동인물은 바로 리회창이였다.
<안기부총선자금모금사건>(일명 <안풍사건>)은 남조선에서 1996년 <국회의원선거>때 <안기부>가 <정부예산>을 전용하는 방법으로 조성한 비밀자금을 <신한국당선거자금>으로 탕진한 대형부정사건이다.
당시 <신한국당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 있던 리회창은 <안기부>가 불법적으로 조성하여 넘겨 준 <안기부자금> 900억원중에서 500억원을 <선거자금>이라는 명목으로 186명의 자기 패당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의 거액의 돈을 꿀꺽 삼켜 버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회창은 자기는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억지를 부리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이번 사건의 수사로 당시 신한국당선거대책위원회 부의장직을 맡았던 황명수씨에게 구속령장이 청구되고 선거대책본부장이였던 강삼재의원이 검찰의 조사를 받을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의장이였던 리총재만 몰랐다고 하는것은 부반장과 줄반장이 교무실에서 벌을 서고 있는데 반장은 나는 몰라 하는 격이다.>고 조소하였다.(<한국문화방송> 2001년 1월 6일)
지난 4월 남조선에서는 리회창이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부정뢰물사건이 터져 나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뢰물수수사건은 한때 여야를 제 집처럼 드나 들며 활개치던 최규선이 지난해 12월 이른바 <방미활동>에 써달라고 리회창에게 2억 5천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찔러 준 사건이다.
이에 대해 관련자들은 <최규선씨가 리회창의 방미일정에 도움을 주었으며 윤여준의원을 통해 2억 5천만원을 주었다>고 진술함으로써 이 뢰물사건이 사실임을 정확히 립증했다.(<기독교방송> 2002년 5월 7일)
그러나 리회창은 파렴치하게도 관련자들의 증언진술을 모두 부정해 나서면서 자기는 그런 일이 없다고 뻗치는 방법으로 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꾀하였다.
오물장에서는 악취가 나기 마련이듯이 인간오물인 리회창이 제 아무리 청백한체 해도 썩을대로 썩은 몸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는 막을수 없다.
지난 3월에 발표한 재산공개시 리회창은 자기 재산이 8,600만원이 더 늘어 났다고 밝혔다.이와 관련하여 남조선 각계에서는 지난해 최고급자동차를 사고도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저축할수 있었느냐고 반문하면서 <후원금과 국고보조금으로 정치를 하고 세비를 저축하는 리회창의 정치는 부정협잡정치>라고 야유했다.(<제1라지오> 2002년 3월 13일)
탐욕과 부정축재에 눈이 어두운 리회창의 더러운 정체는 주택문제에서도 드러 났다.
리회창은 년간 집세가 1억원이상되는 105평짜리 최고급 호화주택 2채를 지난 4년동안 공짜로 리용해 왔다.이것이 폭로되자 리회창은 친척이 빌려 준 집이라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사실은 그의 녀편네가 <15억원의 엄청난 돈을 주고 직접 구입한것>이라는것이 공개되였다.(<한국문화방송> 2002년 4월 16일)이를 두고 남조선의 정계에서는 <리회창이 105평짜리 호화주택 2채를 임대해 장남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일정한 소득원이 없는 아들의 생활비 일체를 어느 돈으로 지불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리총재가 1997년 불법적으로 모은 대선자금 236억 7천만원 가운데 검찰수사에서 규명되지 않은 110여억원을 쓰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한국문화방송> 2002년 3월 5일)
주택문제로 사회여론이 분분해 지자 하는수없이 리회창은 <송구스럽다>느니,<죄송스럽다>느니 하고 속에 없는 <사과>놀음을 벌렸고 지난 5월에는 집을 이사하지 않으면 안되였으며 그의 녀편네는 기자들에게 직접 집을 보여 주는 추태까지 부렸다.
리회창을 본따서 그의 족속들도 모두 날고 뛰는 부정협잡군들이다.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세청>을 동원해 여러 기업체들로부터 모두 166억 3천만원의 <대통령선거>자금을 강제모금한 일명 <세풍>사건으로 불리우는 대형부정사건도 리회창의 동생 리회성이 깊숙이 개입하여 감행한 <한나라당세금도적질사건>이다.
리회창의 아들 리정연은 제 애비를 닮아 부정협잡과 도적질에 이골이 난 전형적인 사기군이다.
남조선의 <민주당>이 <리회창총재의 아들이 부실기업을 유망기업으로 위장해 6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한국문화방송> 2002년 2월 18일)고 비난한 하나의 사실을 놓고서도 리회창족속들은 등쳐 먹고 빼앗아 먹고 속여 먹고 잘라 먹는데 <특출한 솜씨>를 가진 도적경력자,족벌사기집단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리회창이 지금까지 도적족속들을 거느리고 그 괴수가 되여 감행한 부정부패행위는 엄청난것이지만 세상에 드러 난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리회창과 그 족속들은 현대판 강도들이며 사기협잡군들이며 도적놈들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리회창이 남조선에서 피대를 돋구어 가며 그 무슨 <부정부패정권타도>를 부르짖는것은 참으로 뻔뻔스러운짓이 아닐수 없다.
리회창과 같은 사기협잡군은 권력의 자리를 탐낼것이 아니라 마땅히 남조선인민들의 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 남조선 각계에서는 리회창이 <대통령후보>는 커녕 <정치인>의 초보적인 자격도 없다고 하면서 하루빨리 정계에서 물러 날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친일가계의 후손이자 통일론의를 저해하는 리회창을 정계에서 제거하고 력사의 심판대에 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시대 자격미달정치인>,<속좁은 심술정치인>,<대통령증 중환자>,이것이 리회창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평가이다.
우리는 온 겨레와 함께 남조선에서 리회창과 같은 역적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면서 민족앞에 엄중한 재난을 가져 오려 하는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리회창은 남조선인민들의 한결 같은 요구대로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 나야 한다.
만약 리회창이 계속 민심을 거역하는 길로 나간다면 분노에 찬 남조선인민들의 준엄한 징벌을 면치 못할것이다.
주체66(1977)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 가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렬차가 어느한 역에 이르자 수행원들에게 려객들에서 봉사하는 곽밥을 보고 가자고 말씀하시였다.
수원이 가져 온 여러개의 곽밥을 차례로 살펴 보시던 주석께서는 문득 곽에 있는 저가락을 드시였다.
당황한 수원은 자기가 맛을 보겠다고 말씀 드렸다.
주석께서는 음식맛은 대신 볼수 있지만 려행하는 인민들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야 어떻게 대신할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밥곽의 음식을 하나하나 맛 보시였다.
그리고 일군들에게 반찬의 가지수를 늘이고 그 질을 높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1962년 1월 초 김일성주석께서 평양제사공장을 찾으시였다.
광복전에 건설된 공장은 매우 불비하였다.
주석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일군들에게 로동자들에 대한 관점이 바로 서지 않은 표현이라고 하시며 당장 새 공장을 건설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몸소 그 부지를 잡아 주시며 건설비에 관계없이 로동조건과 문화휴식조건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방향에서 공장을 건설할데 대한 조치를 취해 주시였다.
그리하여 평양제사공장건설비는 완공후 실비로 계산되였다.
주체63(1974)년 11월이였다.
자강도의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주석께서는 어느날 도내 일군들의 회의에 참석하시였다.
회의는 오후 3시가 되여서야 끝났다.일군들은 주석을 숙소로 모시려고 했다.
주석께서는 회의가 끝난 다음 표창식이 있다고 했는데 일을 많이 한 로동계급을 표창하는 행사에 참가하겠다고 하시며 행사장으로 가시였다.
일군들은 점심식사도 못하신 주석께서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것이 송구스러워 시간을 앞당기려고 표창자들의 이름만 불러 나갔다.
그러자 주석께서는 직장과 직위를 밝혀 부르라고 말씀하시였다.
표창식은 오후 5시에 끝났다.다음 현지지도 일정이 맞물려 있어 주석께서는 끝내 점심식사를 못하시였다.
그러나 주석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말씀하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