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 진행/합의문 채택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가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우리측에서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측위원장인 국가계획위원회 1부위원장 박창련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성원들,수원들이 참가하였다.
 남측에서는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측위원장인 재정경제부 차관 윤진식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성원들,수원들이 참가하였다.
 회의에서 쌍방은 6.15공동선언의 숭고한 리념밑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경제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북남경제협력사업이 진척되여 여러 분야에서 경제협력을 다방면적으로 추진해 나갈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회의에서 쌍방은 공동선언의 정신에 기초하여 단합과 협력,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에 맞게 경제협력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당면문제들에 대하여 의견들을 교환하고 해결방도를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회의에서는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 합의문이 채택되였다.
 합의문은 다음과 같다.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 합의문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가 2002년 11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회의에서 쌍방은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맞게 경제협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당면문제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북과 남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을 동시에 빨리 진척시켜 나가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쌍방은 1차적으로 동해선 철도와 도로를 금강산지역에,서해선 철도와 도로를 개성공업지구에 련결하여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이 진척될수 있도록 실무적대책을 적극 취해 나간다.
 이를 위해 철도 및 도로련결지점을 쌍방 군사당국이 합의하는데 따라 11월중에 공동측량을 하여 정하되 날자와 진행절차문제들은 문서교환방식으로 협의하며 공사일정표를 교환하고 필요한 공사진행정형을 정기적으로 서로 통보하기로 한다.
 쌍방은 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실무접촉을 11월 중순 금강산에서 가지고 당면한 실무적문제들을 협의해결한다.
 2.북과 남은 2002년 12월 하순에 개성공업지구건설이 착공되여 원활히 추진되도록 적극 협력한다.
 북측은 11월 중순 개성공업지구법을 공포하며 남측은 빠른 시일안에 필요한 기반시설건설을 상업적방식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한다.
 쌍방은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관련한 실무접촉을 12월 초에 가지고 당면한 실무적문제들을 협의해결한다.
 3.북과 남은 쌍방 민간선박들의 상대측령해통과와 안전운항 등 해운협력에 관한 합의서채택을 위한 실무접촉을 11월 19일에,북측 동해어장의 일부를 남측 어민들이 리용하는 문제와 관련한 실무접촉을 협의확정되는 빠른 시일안에 각기 금강산에서 가지기로 한다.
 4.북과 남은 빠른 시일안에 이미 합의된 경제협력의 제도적담보를 위한 4개 합의서를 각기 해당한 법적절차를 밟아 동시에 발효시키기로 한다.
 쌍방은 경제협력제도분과회의를 12월 중순 서울에서 가지고 4개 합의서의 후속조치와 통행,원산지확인 등의 문제를 협의하기로 한다.
 5.북과 남은 남측경제고찰단의 북측방문이 실현되도록 노력한다.
 6.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4차회의는 2003년 2월 초 서울에서 진행한다.

2002년 11월 9일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측위원장  박 창 련  남측위원장  윤 진 식

 8일 저녁 우리측에서는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에 참가한 남측대표단을 위하여 연회를 차렸다.(끝)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에 참가하였던 남측대표단이 떠나갔다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회의에 참가하였던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측위원장인 재정경제부 차관 윤진식을 단장으로 하는 남측대표단이 9일 평양을 떠나갔다.
 비행장에서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우리측 위원들이 남측대표단을 전송하였다.(끝)


혁명전사들에게 은정어린 생일상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평양시 서성구역 상신동에서 살고 있는 승영희에게 보내신 생일 일흔돐상이 8일 그에게 전달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어엿한 당일군으로 자라난 그는 인민무력기관과 문화예술부문 등 중요기관들에서 성실히 일하였다.
 그 과정에 <김일성훈장>을 비롯한 많은 표창과 훈장,메달들을 수여 받았으며 당과 국가의 주요대회들에도 참가하였고 여러차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함흥시 신흥2동,금실동에서 사는 항일혁명투쟁공로자 리귀복,혁명렬사유자녀 최정남에게 보내신 생일 여든돐상과 일흔돐상이 이에 앞서 그들에게 각각 전달되였다.(끝)


백두산지구가 혁명의 성지로서의 모습을 일신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백두산지구가 혁명의 성지로서 자기의 모습을 일신하였다.
 백두산지구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1년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 혁명전통교양의 거점답게 더 잘 꾸려 졌고 삼지연읍과 무봉,리명수,포태 등지에 110여동의 공공건물과 3,000여세대의 현대적인 살림집이 일떠섰으며 연 250키로메터의 도로에 대한 신설 및 개건확장공사와 발전소건설이 마감단계에서 다그쳐 지고 있다.
 대홍단혁명전적지에 1만 1,000여평방메터의 부지면적에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모신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탐과 김일성주석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에 오르신 모습을 형상한 대형모자이크벽화를 비롯하여 백두산3대장군의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들이 삼지연읍을 비롯한 여러곳에 모셔 졌다.
 또한 백두산지구의 여러 장소들에 혁명사적비들이 새로 건립되고 간백산밀영을 비롯한 여러 전적지들에 혁명유적,유물영구보존설비들이 보다 높은 수준에서 제작되여 설치되였다.
 백두산정에서부터 천지기슭까지 수천개의 화강석과 강철기둥으로 이루어 진 천지돌계단이 새로 형성되였고 백두산일대의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과 관련한 자료들을 콤퓨터화면 등에 의하여 생동하게 보여 줄수 있게 꾸려진 백두관이 특색 있게 일떠섰다.
 이곳 인민들과 답사자들을 위한 편의봉사시설들,고산지대의 특성에 맞게 건설된 현대적인 살림집들,학교,유치원,탁아소들이 건설됨으로써 이 지구의 풍치가 이채롭게 변모되였다.
 삼지연-백두산,백두산-백두산밀영-삼지연,삼지연-보천보사이의 연 250키로메터도로에 대한 신설 및 개건확장공사가 마감단계에서 추진되고 근 50만그루의 수종이 좋은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 져 성지의 운치를 더욱 돋구어 주고 있다.
 이 지구에 새로 일떠선 기념비적창조물들은 혁명의 성지를 더 잘 꾸리려는 전국당선전일군돌격대원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이룩된것이다.(끝)


평양교예단의 공중교예 <비행가들>종목에 무한국제교예축전 최고상 수여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중국 무한국제교예축전에서 평양교예단의 공중교예 <비행가들>종목에 축전최고상인 <황학상>이 수여되였다.
 조선의 공중교예배우들은 18메터장거리날아잡기,세바퀴돌아잡기,옆으로세바퀴돌아잡기 등 여러가지 최첨단교예동작들을 보여 주어 관중들의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이 종목은 제22차 몽떼까를로국제교예축전과 제7차 중국 오교국제교예축전에서 <금상>과 <금사자상>을 받아 셰계적으로 잘 알려 진 작품이다.
 조선배우들이 출연한 교예 <줄중심조형>에는 우수상이 수여되였다.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이번 축전에는 중국,로씨야,웨ㅌ남,우즈베끼스딴,일본 등 20여개 나라와 지역에서 온 250여명의 교예배우들이 참가하였다.(끝)


타이방문 조선타이친선의원단대표단 출발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타이를 방문하는 농업과학원 계영삼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타이친선의원단대표단이 9일 평양을 출발하였다.(끝)


애국의 선군정치를 적극 옹호해 나갈것을 호소/국제고통련 위원장

 (모스크바 1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선군정치는 남조선까지 포괄하여 전 민족의 존엄과 안전,리익을 지키는 애국애족의 정치이며 민족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침해하는 외세에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는 정의의 보검이라고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국제고통련) 리동철위원장이 6일 발표한 담화에서 지적하였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계획을 중지하지 않으면 조미대화도 없고 조일관계나 북남관계도 파국상태에 들어 가게 될것이라는 미국의 극히 오만무례한 태도는 공화국이 무장을 놓고 굴복하라는것이며 조국통일을 가로 막고 북남관계도 뒤집어 엎으려는 흉계로부터 나온것이라고 폭로하였다.
 오늘 북과 남은 다같이 미국으로부터 엄중한 침해와 위협을 받고 있으나 다같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고 하면서 그는 선군이야말로 북이나 남이나 해외나 온 겨레가 다같이 따르고 받들어 나가야 할 유일무이한 정치방식으로 된다고 강조하였다.(끝)


국제고통련 뷸레찐 발행

 (모스크바 1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국제고통련)가 뷸레찐 <통일>을 발행하였다.
 뷸레찐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일본국 총리를 만나시는 사진을 모시였다.
 뷸레찐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본 교도통신사 사장이 제기한 질문에 주신 대답과 조일평양선언을 실었다.또한 미국이 핵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일방적이고 오만무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것과 관련하여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실었다.
 뷸레찐은 당창건기념탑사진을 싣고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라는 제목의 글과 시 <어머니> 등을 편집하였다.
 뷸레찐은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이름 지어 주신 축복이의 아버지인 비전향장기수 리재룡의 행복한 가정을 소개하는 글,북남대화와 접촉에 관한 여러 소식들을 게재하였다.(끝)


대안의 사업체계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한 로작발표 40돐을 기념/로동신문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로작 <대안의 사업체계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를 발표하신 40돐에 즈음하여 론설을 실었다.
 주체51(1962)년 11월 9일에 발표된 이 로작에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의 우월성에 대하여 뚜렷이 밝혀 져 있으며 그를 더욱 발전시키고 국가경제관리전반에 구현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이 제시되여 있다.
 주석께서 창조하신 대안의 사업체계와 같은 훌륭한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가 있었기에 조선인민은 불과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회주의공업화의 력사적과제를 빛나게 완수할수 있었고 위력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마련할수 있었다.
 론설의 필자는 김일성주석께서 사회주의경제관리분야에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은 오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관리문제를 빛나게 해결해 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의 현명성은 주석께서 밝혀 주신 사회주의경제관리의 기본원칙들을 철저히 고수해 나가시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경제관리에서 실리를 보장하는것을 기본으로 틀어 쥐고 나가도록 하시는데서 힘 있게 과시되고 있다.
 또한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와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완성해 나가도록 하시는데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끝)


북남대결에로 몰아 가려는 미국방성차관 페이스의 <북핵위협>발언/조선중앙통신 론평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보도에 의하면 최근 남조선을 행각한 미국방성차관 페이스가 <북의 핵개발추진에 강한 우려를 표시한다>느니 그것이 남조선에 <큰 위협으로 된다>느니 뭐니 하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미행정부에서 매파로 지목되고 있는 페이스의 이러한 언동은 우리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집요하게 들고 나오고 있는 <선핵포기>주장을 증폭시킨것으로서 남조선의 민심을 반북대결에로 부추기는 한편 우리를 기어이 무장해제시켜 보려는 어리석은 술책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페이스의 언동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게 되는것은 그 근저에 미국과 우리가 대화의 방법으로 풀어야 할 조선반도핵문제가 마치도 북남간의 문제인것처럼 사실을 오도하여 북남관계를 대결에로 몰아 가려는 불순한 정치적기도가 로골적으로 깔려 있기때문이다.
 우리의 핵문제가 남조선에 <큰 위협>으로 된다는것은 초보적인 론리에도 맞지 않는 언어도단으로서 핵문제의 출발점으로 되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무마시키고 사태의 본질을 가리워 보려는 유치한 발상에서 나온것이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페이스가 우리의 핵문제를 걸고 이번에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에 따라 최근 전례없이 좋게 발전하고 있는 북남관계를 전면차단하려고 시도한것이다.
 그것은 페이스가 <북의 핵문제를 그대로 두고 남북교류를 진행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남북교류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파렴치하게 떠들어 댄 사실이 실증해 주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남관계의 개선을 공정한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겉으로는 좋게 평가하는척 하였지만 내적으로는 저들의 전략적리해관계에 맞지 않는것으로 여겨 왔다.그러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는 북남대결의 장본인으로서의 호전적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페이스의 이번 남조선행각은 우리에 대한 압력공세를 강화하여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제압하기 위한 현지점검으로서 우리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수 없다.
 조선반도의 군사정세가 새로운 전쟁국면에로 번져 질수도 있는 오늘의 엄중한 실태는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것이 바로 모든 현안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는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조미사이의 불가침조약체결제안이야말로 결자해지의 원칙에서 미국에 의하여 산생된 우리의 핵문제를 해결하고 조선반도와 나아가서 세계평화와 안정을 담보할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방안이다.
 미국이 우리의 정당한 불가침조약체결제안을 외면하고 <선핵포기>주장을 계속 고집하면서 조선반도의 군사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 간다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후과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것이다.(끝)


조미기본합의문의 진짜위반자는 미국/로동신문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미국집권층은 <북조선이 스스로 동의한 합의사항들을 위반했기때문에 이는 반드시 처리되여야 한다>느니,우리의 <합의문위반수습책>이니,그 무슨 <대가지불>이니 뭐니 하면서 진실을 외곡하는 망발들을 늘어 놓고 있다.
 9일부 <로동신문>은 이것은 조미기본합의문이 제대로 리행되지 않고 있는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 씌우려는 비렬한 술책이라고 단죄하였다.
 론평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국의 부쉬집단이 우리를 조미기본합의문 불리행의 <범인>으로 몰아 붙이려고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소리를 내돌리는것은 철면피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
 조미기본합의문의 위반문제는 우리가 미국에 대고 할 소리이다.조미기본합의문의 진짜위반자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자신이다.
 조미기본합의문이 원만히 리행되면 조선반도의 핵문제와 평화보장문제를 비롯하여 조미사이에 존재하는 예민한 현안문제들이 공정하게 풀릴수 있게 되여 있다.
 최근 부쉬집단은 핵무기사용을 전제로 한 대조선선제공격론까지 거리낌없이 제창하고 있다.이것은 우리에 대한 횡포한 위협공갈이고 선전포고이며 핵전쟁선언이다.이로써 미국은 우리와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렸던것이다.
 조미기본합의문을 짓밟고 오만무도하게 행동하는 미국에 의하여 조선반도정세는 임의의 시각에 조미무장충돌을 초래할수 있는 극히 위험천만한 사태에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거꾸로 된 강도적론리로 조미기본합의문의 위반자,파괴자로서의 책임을 절대로 모면할수 없으며 대조선적대시압살책동의 강화를 정당화할수 없다.
 미국은 그 누구에게도 납득이 가지 않는 외곡된 론리를 걷어 치우고 건설적인 우리의 불가침조약체결발기를 성근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끝)


조미불가침조약체결은 핵문제를 푸는 비결/로동신문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은 호전적인 미국지배층의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하여 지금 조선반도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타개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는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글의 필자는 우리의 불가침조약체결제안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그들이 조선반도의 평화를 바라는가 바라지 않는가,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르는 척도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할데 대한 우리의 제안은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제안이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근 반세기전부터 미국이 세계제패전략에 따라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추구하면서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방대한 핵무기를 배치해 놓고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해 옴으로써 생겨 난 문제이다.
 조선반도에서의 핵문제해결은 평화보장의 중요한 담보이다.
 지금 조선반도에는 현실적인 평화보장의 제도적장치가 없다.미국에 의해 조선정전협정은 조선반도정세를 통제할수 없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였다.
 비정상적인 무장충돌을 막고 정세를 완화하여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 길은 우리의 제안대로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데 있다.
 우리와 미국사이의 불가침조약체결은 우리 민족에게 뿐아니라 미국자체에도 리로운것으로 된다.
 우리와 미국사이의 불가침조약체결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의 법적기틀이며 조미사이의 적대관계,교전관계해소의 기본열쇠이다.(끝)


일제의 극악한 조선인강제련행제도의 범죄성(1)/로동신문 박사 김덕호의 글 게재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은 박사 김덕호의 글 <일제의 극악한 조선인강제련행제도의 범죄성>(1)을 실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새 세기에 들어 선 오늘도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가 조선에서 저지른 포악무도한 죄악에 대하여 잊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 일제의 극악한 조선인강제련행제도의 범죄성에 대하여 구체적인 력사적사실자료를 가지고 다시금 만천하에 고발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3년 9월 15일에 하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의 모든것을 말살하기 위하여 발악적으로 날뛰고 있을뿐아니라 전쟁완수라는 간판밑에 로동력과 물자를 무제한 략탈해 가고 있습니다.>
 일제의 극악한 조선인강제련행제도문제는 그들의 조선침략의 산물로서 조선침략의 전략적목적에서 정책화되였다.그러므로 조선인강제련행제도문제는 일제의 조선침략의 전략적목적과 밀접히 결부시켜 력사적으로 검토고찰되여야 한다.

     1.일제의 조선침략의 전략적목적과 민족말살정책

 일제는 력사무대에 등장한 첫날부터 조선을 저들의 상품판매시장,원료략타지,자본수출지로 독점하고 조선인민을 가혹하게 착취수탈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부국강병>의 <국시>를 실현하며 조선반도를 대륙침략의 군사전략적교두보로 리용하여 전 아시아를 정복하고 일본이 맹주로 되는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하려는 침략적야망으로부터 대조선군사적강점정책을 전반적대외침략정책의 중요한 고리고 확정하였다.
 일제는 동북아시아반도인 조선반도의 지정학적조건 즉 조선반도가 륙지로는 아시아대륙과 바다로는 태평양지역의 섬나라들과 련결되여 있는 해외침략의 발판의 위치에 서 있는 사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조선을 저들의 <대동아공영권>구상을 실현하는데서 첫째가는 침략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조선을 먹어야 아시아를 먹을수 있다는 일제의 조선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대륙침략전략은 도꾸가와막부통치말기인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사이에 작성제창된 <조선정벌론>을 통하여 세상에 공개되였다.
 <조선정벌론>의 기본내용은 1854년 요시다쇼잉의 <조선을 취하고 만주를 꺾고 중국을 누르고 인디아에 림함으로써 도요도미(<임진왜란>의 침략두목인 풍신수길-필자)가 성취하지 못한바를 이룩하자>(일문 <청일.로일전쟁 사화>9페지,도꾜 1937년)라는 글을 통하여 알수 있다.
 <조선정벌론>의 침략전략은 <명치유신>후 사이고 다까모리일파의 <정한론>으로 실천되고 1876년의 침략적이며 불평등적인 <강화도조약>으로 정책화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5조약>의 날조로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침략전략에 기초하여 우리 민족을 모조리 말살하는 포악한 민족말살정책을 감행하였다.조선민족말살정책은 조선의 국가멸망,국토략탈,민족멸종에 의한 조선의 일본화,조선사람의 일본인화를 목적으로 한 일본식민족동화정책이였다.
 조선민족말살정책은 명치<천황>을 주축으로 하여 이또 히로부미를 두목으로 한 해외침략에 이골이 난 <삿죠>(샤쯔마번,죠슈번)출신의 군국주의군벌들에 의하여 모의책정되였다.조선민족말살정책은 5대군사책략으로 강행되였다.5대군사책략은 군사적강제에 의한 <국부>(국왕),<국모>(왕비)에 대한 백색테로,군사적강제점령,군사적강제통치,군사적파괴략탈,군사적강제련행이다.조선민족말살정책의 현지집행기관인 <통감부>,<총독부>,<조선군사령부>는 조선민족멸종을 위하여 수백만명의 조선인민들을 학살,체포투옥하였으며 1938-1945년까지만 하여도 600만명이상의 조선의 청장년들을 로동노예,성노예,군노예로 징발해 감으로써 부부생활을 통한 민족후대증식을 파탄시켰다.일제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화결혼>을 정책화함으로써 조선민족의 혈통말살을 획책하였다.
 일제는 강제징발한 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을 노예적고역,성폭행,전쟁대포밥으로 내몰아 학살하거나 불구자로 만듦으로써 조선민족의 기본력량을 소멸약화시켰다.
 일제는 민족국가,민족령토,민족자원,민족인적력량은 물론 민족어와 민족문화,민족력사,민족인의 개성적표식인 성과 이름까지 깡그리 빼앗는 세계정복력사와 식민지동화정책에서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악독한 민족말살정책으로 조선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려고 광분하였다.
 세계적인 정복대국으로 알려 진 고대그리스,로마제국,중세기의 뛰르끼예,몽골,근대의 나치스도이췰란드도 피정복민족의 국가와 령토는 파괴략탈하였지만 그 민족의 말과 글,민족력사,성과 이름까지 빼앗지는 않았다.오직 일제만이 조선의 민족적인 모든것을 빼앗아 갔다.

     2.조선인강제련행제도의 개념과 내용

 일제의 범죄적인 조선인강제련행제도는 군사적강제에 의한 민족인적자원인 민족로동력의 징발,노예화,소멸을 목적으로 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주요구성부분이다.
 일제는 군사적강제수단으로 조선민족로동력을 강제징발하여 로동노예,성노예,군노예로 만들어 생명의 법적담보가 없는 노예고역장,성폭행장,전쟁송장터로 들이밀어 수많은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거나 로동능력상실자,성기능불구자로 만드는 반인륜적대범죄를 저질렀다.
 강제련행피해자들의 증언과 피해진상조사자료에 의하면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은 징발,체포,랍치,회유기만,공갈협박,사기,인종차별,노예로동,성폭행,<육탄돌격>,고문,투옥,학살 등 인간증오와 야수성,포악성,잔인성의 악순환과정으로서 그것은 본질상 물리적강제인 육체적강제와 정신적강제를 결합한 초폭력적강제였다.1932년 일본 나가사끼현에서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기만하여 일본인녀성을 중국상해의 일본해군위안소에 끌어 간 사건에 대하여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1937년 일본인 알선업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사실이 있었다.(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 <마이니찌신붕> 1997.8.6일부 공포)
 이 사실은 당시 이미 국제법은 물론이고 일본국내법에도 <강제>라는 개념에는 육체적강제뿐만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꾀이거나 응하지 않으면 협박공갈을 가하는 등에 의한 정신적강제가 포함되고 있었다는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데로부터 일본정부는 1993년 5월의 국회답변에서 강제련행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단지 물리적강제를 가한다는것뿐만아니라 협박이라고 할지 공포감을 주는 방법을 적용하여 본인의 자유의사와 배치되는 행위를 감행케 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다>(참의원 예산위원회.1993.5.3 다니노 사꾸다로내각관방 내각 외정심의실장의 답변)
 강제련행이란 말은 1960년대부터 사회적용어로 쓰이기 시작하였다.광복전 일제가 조선인민들을 군사적강제수단으로 련행해 가서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있을 당시에는 강제련행이란 말이 없었다.조선국내에서 강제로동을 시키기 위하여 징발하는 로동력은 리조봉건사회에서 존속되여 오는 노예로동제인 <부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조선국외에로의 로동력징발은 <이입>,<이주>,<로무동원>,<모집>이라는 일본식용어를 사용하였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제도는 1926년의 <국제노예조약>이 규정한 노예로동이였다.이 조약에서는 노예제도를 <그 사람에 대하여 소유권을 동반하는 일부 또는 전부의 권능이 행사되는 개인의 지위 또는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하였다.국제조약이 규정한 노예제도는 조선인강제련행제도에 전적으로 부합된다.그것은 당시 일본국가가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을 일본<제국>의 국가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가진 노예소유자로 군림하고 있었기때문이다.그러므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제도는 원칙상 노예로동제도였다고 말할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전후처리에 관한 까히라선언(1943.11)의 조선문제에 관한 결의에서도 <조선인민의 노예상태>라는 말로써 조선에대한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노예통치의 사실을 인정하였다.
 광복전 일본의 사법기관이 편찬한 <판례집>이나 형사소송문서에 일본군대,헌병,경찰관,관공리,기업체와 민간인이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을 잔인하게 학살한것을 살인죄로 기소공판한 실례가 단 한건도 없었다.이 사실은 일제와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과의 관계를 노예주와 노예의 주종관계로 규정하는 제도적장치가 되여 있은데 기인된다.
 조선반도내에서나 일본본토를 막론하고 일본인은 <조선인이 사람인가,정어리가 물고기인가?>라고 인종차별을 하면서 짐승 다루듯 하였다.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령> 공포이후 징발한 <징용>로무자들을 <반도로동전사>,<산업전사>,<응징사>라는 허울 좋은 딱지를 붙여 노예적혹사를 한 다음 임의의 시각,임의의 장소에서 생각나는대로 <죄명>을 들씌워 구타고문하고 죽일수도 있었으며 죽여도 살인범으로 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증오사상이 체질화된 전통적인 일본인의 조선민족멸시관의 깊은 뿌리에서 나온것이였다.
 그것은 나가사끼 미쯔비시 하리마탄광의 전 로무계원이였던 일본인 고하꾸 마사유끼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규슈에서 로무관리의 력사는 미쯔이미이께탄광에서 감행된 혹독한 죄수로동에 대한 차별적로무관리의 전통을 무시하고는 생각할수 없다.그러나 그러한 로무관리는 혹가이도의 다꼬베야(로동자들을 엄격한 감시속에 가두어 넣는 감옥과 같은 합숙)에 비교할수 있는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권력을 얻어 비로소 살인적인 로동강도를 달성할수 있었던것이였다.로무담당자는 사실상 사람을 죽이거나 살려 둘수 있는 권리를 쥐고 로동자우에 군림하였다.탄광들에서 로무계에는 우익폭력단출신,직업군인,형사출신의 무리들이 많이 붙어 있는것이 보통현상이였다.강제련행로동자에 대한 로무관리대책은 이러한 전통적폭력장치와 국책수행,황국신민화라는 명분에 독립사상을 품은 자들에 대한 적발이라는 요소가 가해 져서 그 특별한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데서 수립된것이며 이 대의명분이 있으면 육체적고문은 물론 학살까지도 합법화된것이다>(일문으로 된 <특고월보> 1943.4월호 96페지)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은 비공개적강제련행과 공개적강제련행의 두 단계로 실시되였다.비공개적강제련행은 청일전쟁,로일전쟁시기 일본군이 일시적으로 조선반도를 군사적으로 강점하였을 때 <점령군>의 군권으로 지역적이며 제한된 대상에게 강요한 강제련행이였다.공개적강제련행은 조선을 무력으로 완전히 강점하고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법제권과 군사,경찰의 공권력에 의거하여 전국,전민을 대상으로 감행한 강제련행이였다.(끝)


평양의 꽃응원단/문학가 장진호의 글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에 의하면 남조선의 문학가 장진호가 <평양의 꽃응원단>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글은 다음과 같다.
 평양의 꽃응원단이 돌아 갔다.석별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지금도 그들모두가 곁에 있는듯 하다.
 평생에 그렇듯 청순하고 예쁜 처녀들은 처음 보았다.그들을 본 시민들은 누구나 꿈을 꾼것만 같다고 한다.그들의 모습을 담은 비데오를 다시 보며 환성을 올리고 그들이 부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설레이는 시민들,그들의 차림새와 행동,말투까지 다 류행이고 화제다.
 평양 가서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들 한다.
 부산이 생겨 이토록 평양풍,통일풍에 휩싸여 본적 있었던가.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의 꽃으로 피여 난 평양의 응원단을 그리는 마음 저 푸른 파도에 실어 북으로 띄워 본다.

     부산의 새 개항

 부산은 오랜 세월 수난과 비극의 항구였다.
 왜구가 침략의 촉수,침로의 발자국을 찍은 곳,임진란의 화살이 박히고 백의동포의 피가 뿌려 진 통한의 땅,일본의 강요로 개항이 이루어 진 이래 외래침략의 징검다리였던 땅,40여년 일제식민통치의 교두항이였던 부산이였다.
 부산은 민족의 피눈물이 하염없이 뿌려 진 통곡의 항구이기도 했다.
 이곳을 통해 망국의 한을 안고 <관부련락선>에 올랐던 동포들은 그 얼마였고 징용,징병으로,성노리개로 끌려 갔던 청장년들과 녀인들은 또 얼마였던가.
 이 나라의 금은보화가 이곳을 거쳐 오랑캐의 섬나라로 쉴새 없이 빠져 나갔다.
 수난의 력사는 8.15후에도 멈추어 지지 않았다.
   양키강점자들의 침략선이 쉴새 없이 부산항으로 드나들었다.6.25전쟁때에는 미국의 침략병기와 군수물자가 산더미처럼 쓸어 들어 <한>반도를 재더미로 만들었고 수백만의 량민학살에 사용됐었다.
 이 땅에서 살수 없어 고국을 하직하는 이민들의 눈물은 또 얼마였던가.가지 말라는 애원과 살아 돌아 오라는 기원의 울부짖음을 뒤로 남긴채 떠나가는 려객선의 처량한 고동소리 그칠 날 없던 부두,오늘도 서양식,왜식건물이 어수선하고 양풍,왜풍이 활개치는 <남이 사는 내 나라>,<식민지개척민들이 그려 놓은 설계도우에서 일어 서는 류랑민의 도시>,그 오명을 털어 버리지 못한 부산이다.
 그러한 부산으로 김정일장군께서 보내주신 평양의 귀빈들이 찾아 왔다.
 평양은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로 위상 떨치는 민족존엄의 성새요,자주자활의 상징이다.7천만 겨레의 참조국으로 각광 받는 어머니조국의 성도,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릉이 웅건히 자리 잡은 민족의 본향,주체조국의 시조 김일성주석께서 영생하시는 태양의 성지 평양,우러르는 겨레의 마음이 끝없이 달려 가는 이 민족의 성도에서 대규모의 체육선수단과 응원단이 기세충천 입성했다.
 김정일장군께서 하나의 겨레임을 보여 주라고,분단의 한을 풀고 동족의 정을 나누라고 보내주신 자주,평화,통일의 사절 평양꽃응원단.
 그들을 맞이한 부산의 감격은 컸다.평양의 손님들을 태우고 단일기를 휘날리며 <만경봉-92>호가 다대포항에 입항하자 폭풍 같은 환호가 터져 올랐다.인산인해의 환영군중,각양각색의 환영구호판.
 <환영 북측응원단>,<반갑습니다.평양응원단>,<북측응원단 열렬환영>
 온 부산시민만이 아닌 이남민모두의 환호가 저 남해의 한끝까지 메아리쳤다.그에 답례하는 평양응원단 취주악대의 경쾌한 연주,이렇게 남북은 순간에 하나로 되였다.
   약 1시간에 걸친 평양꽃응원단환영행사는 부산이 처음 엮은 감동의 화폭이였다.한 시인이 터친 격정대로 <력사에 의해 더럽혀 진 부산의 수난이 일시에 사라지는 장쾌한 광경>이였다.
 평양꽃응원단의 입항은 분명 부산의 새로운 개항이였다.부산의 면모를 새로이 일신시키는 뜻 깊은 사변이였다.

     평양꽃바람

 평양응원단은 아름다운 선녀군단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절색이다.남에서는 보기 힘든 풋풋하고 소박한 외모,해맑은 미소와 깨끗한 얼굴,너무나 곱고 예쁘고 미끈한 그녀들은 그야말로 세계일류의 미인들이였다.통털어 선녀대군이였다.
 외제화장품으로 멋을 낸것도,정형수술로 다듬은것도 아니였다.그들이 자랑하는 최고의 화장품-<봄향기>로 미를 한껏 돋군 <천연미인>들이였고 외래풍에도 황금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미녀>,<건강미녀>들이였다.
 평양미녀의 매력은 외모에만 있지 않았다.마음씨 또한 더없이 아름다왔다.
 겉 보고 속보기라고 말씨는 상냥하면서도 가식이 없고 인사는 소박하면서도 례의가 넘쳤다.교태도 애교도 없었지만 마음은 저절로 끌려 들고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어 졌다.
 자고로 례절 바르고 상냥하며 절개 있고 순결한 우리 나라 녀성의 참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평양의 꽃>,<평양의 미녀>들이였다.
 북의 처녀들은 어찌하여 저다지도 아름다울가.
 태양이 없는 화원을 생각할수 없다.
 평양의 녀인들은 김정일장군께서 가꾸시는 인간사랑의 화원에서 꽃 피고 다듬어 지는 진짜 미녀들이다.이북은 장군의 사랑의 정치아래 꽃 피는 인간화원이다.남녀의 차별도 없고 빈부격차도 모른다.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도와 주며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며 산다.
 그중에서도 녀성들은 <꽃>으로 사랑 받으며 행복을 구가하고 있다.<나라의 꽃>,<생활의 꽃>으로 활짝 피여 나고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녀자는 꽃이 아니야>라는 노래가 울려도 북에서는 <녀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가 경쾌하게 울린다.
 장군의 녀성우대정치가 있어 이북녀인들은 그토록 희한한 녀성천국에서 진선미를 한껏 뽐내고 있다.한 평양미녀가 <저만 예쁘지 않아요.우리모두가 다 예쁘고 아름다와요.>라고 자랑했듯이 김정일장군의 사랑의 정치가 꽃 피는 이북에서는 모두가 선녀이고 미인이다.평양꽃응원단은 그 많고 많은 미인들중의 일부일따름이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처녀들,평양꽃응원단은 이 땅에 때 아닌 봄꽃바람을 몰아 왔다.
 녀성에 대한 차별바람,녀자가 싫어 지는 미운바람,밥 먹듯이 벌어 지는 리혼바람에 몸살을 앓던 경향이 훈훈한 평양꽃바람,평양미녀풍에 빠져 들었다.<새벽녘의 감처럼 싱싱한 북녀풍>은 이남의 남성계를 <거 참 환장하겠네.손만 잡아 보아도 한이 없겠네.>로 들썩거리게 했다.
 <평양꽃 사랑하는 아저씨부대>가 생겨 나고 인터네트에 북녀들의 사진과 이름이 소개되며 이북처녀와 결혼하겠다는 남자들이 무려 70프로에 이르렀다.<마음은 념불보다 제밥>이라고 경기에는 관심없이 미녀보기에만 열중하고 그 녀들을 며느리 삼겠다는 아빠,엄마수는 셀수조차 없이 많다.북녀와 악수한 손을 씻지 않고 고이 간수하겠다는 대학생,청년들은 또 얼마인가.
 그 경이할 꽃바람을 보며 세계가 선망하는 선군정치로 이북을 인간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움의 나라로 만드시고 이북민을 미인의 세상에서 살게 해주신 김정일장군에 대한 숭앙의 마음 금할수 없다.
 북녀풍에 빠져 든 이 땅 민중의 마음도 하나같이 그분께로 모아 지고 있으니 평양꽃바람은 그야말로 김정일장군숭앙열풍이라 하겠다.

     절승의 명소

 평양꽃응원단은 예술의 천사들이였다.
 그들의 춤과 노래,응원은 하나같이 완성된 예술걸작품이였다.
   하늘하늘한 자태를 뽐 내는 분홍,연두,노랑,하얀 등 형형색색의 한복과 단아한 운동복차림의 담차고 발랄한 신세대 미녀들의 잘 째이고 맵시 있는 응원모습은 경기성적보다 더 큰 탄성을 불러 일으켰다.뛰여 난 취주악연주실력과 지휘자의 현란한 지휘봉묘기,무용수들의 날씬한 몸동작은 관객의 눈뿌리를 뽑았다.박력과 저력 있는 음악과 그 세찬 울림은 일시에 땅을 박차고 질풍 같이 내달리는 천군만마인양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군중을 격동시켰다.
 그들의 조직력,단결력,일사불란함은 가히 충격적이였다.월드컵경기때 서울과 부산 등에서 붉은색샤쯔응원단과 주부응원단이 등장,세찬 응원선풍을 일으켰지만 평양꽃응원단과는 비교할바가 못됐다.평양꽃응원단은 수백명이였지만 수백만을 압도하는 응원기세를 올렸다.모두가 한덩어리,한몸처럼 움직였다.
 안내요원 한씨가 <북의 큰 힘을 본다.저것이 바로 단결력이다.저 단결력앞에 미국도 움츠러 들고 있지 않는가.>라고 놀라와 했듯이 평양응원단은 김정일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북의 위상을 <신기의 응원>으로 생생히 재현했다.북의 응원수준을 압도할 응원이 없듯이 위인을 모셔 강성 떨치는 이북을 당할 자 세상에 없다는것을 만방에 과시했다.
 그들이 곳곳에서 펼친 공연 또한 이채로왔다.
 프레스쎈터앞에서의 일반공연,조선로동당창건 57주년을 경축하여 진행한 선수촌 야외무대에서의 공연은 <만점짜리>로 환성을 자아냈다.취주악 <아리랑>으로부터 갖가지 민요에 흥겨운 민속무용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아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한 없는 민족정서를 불러 일으켰다.
 미국,일본 등 외국노래만 류행되고 춤도 노래도 그 본을 따던나머지 미일의 <문화괴뢰>로까지 전락되는 이 땅,통일적인 문화예술국책이 없어 오합지졸에 상업화되여 버린 예술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북의 응원단은 황홀함의 극치이면서도 민족성,주체성이 력력했다.민족자주의 얼이 살아 숨 쉬고 겨레의 문화전통이 올곧게 이어 지는 민족의 참예술이였다.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성대히 거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는것만 같다.>
 <예술의 최고걸작품,21세기 문예부흥의 신호탄으로 명성 떨친 아리랑을 보지 못한 부산시민들을 위해 김정일령도자께서 저토록 훌륭한 응원단을 보내셨다.>
 이는 한두사람의 감탄,감사가 아니였다.부산시민들과 부산에 온 이남사람들모두의 진정 넘친 탄사였다.
 김정일장군은 과시 예술의 천재이시다.
 장군께서 선군의 음악정치를 펴시고 이북을 예술의 나라,노래의 나라로 올려 세우셨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 평양꽃응원단을 보니 장군은 과시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분이심을 확신케 했다.
 부산문인협회의 정모씨는 <김정일령수께서는 예술로 신비의 정치를 하신다.몇천마디의 말보다 저들의 공연 하나면 북의 실상을 단번에 알수 있다.>며 장군께서 춤응원단,노래응원단을 보내주신 의미가 정말 크다고 마음속생각을 터놓기도 했다.
 평양꽃응원단의 출현은 부산을 급기야 세계일류의 명소로 부상시켰다.
 부산은 원래 산과 강,바다가 있어 경개로서는 빠지지 않았다.하지만 유흥업이 창궐하고 외래물류와 문류가 활개쳐 문화적얼굴이 없는 상업도시로 전락했다.여름한철 피서객이 몰려 들기도 하지만 어지럽고 메마른 해안이였다.
 그런 부산에 새로운 모습,절승의 경개가 펼쳐 졌다.
 령도자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 흘리고 어머니 조국찬가를 부르며 감격에 젖는 평양처녀들,참삶의 열정과 미래에 대한 희열과 랑만으로 충만된 그들의 모습은 만사람을 감복케 했다.북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물 젖은 사람들을 새롭게 정화시켰다.다대포주민들이 <그늘지고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 주고 쪼들린 동네에 기쁨을 가져 온 고마운 천사들>이라고 입을 모았듯이 그들은 모두가 시대의 선두에 선 <모델>이였고 참삶을 선도하는 <선생>들이였다.
 그래서 더더욱 돋보이고 인기를 끄는 그들에게서 힘을 얻고 희망을 키우려는 사람들로 하여 부산은 전에 없이 흥성거렸다.
 평양꽃응원단이 머무르는 다대포항으로부터 구덕야구경기장,부경대체육관,금정체육관 등 북녘선수들이 출전하고 응원단이 진출하는 장소에는 례외없이 관중구름이 밀려 들었다.
 경기장은 사람바다,경기장밖은 사람물결,텔레비도 라지오도 온통 북측응원단소식,사람마다 화제는 평양꽃응원단,북측응원단활동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대에만도 200여개 시민단체,수천명의 각계층 시민이 참여했다.실로 부산이 경험한적 없는 일대 복새통,사람충격이였다.
 평양응원단의 노래와 춤은 14차 아시아경기대회를 가장 멋지게 장식한 원동력이였다.그들의 활동은 금메달보다 더 빛났다.승부만이 란무하는 경기장을 춤바다,노래마당으로 만들고 텅 비였던 경기장을 초만원의 인산인해로 만든 응원,무관심의 아시아경기대회가 가장 인기 있는 체육축제로 된것은 바로 평양꽃응원단의 덕이였다.
 외국어대학교의 리모교수도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북측응원단을 파견해 주셨기때문에 이루어 진 대성공의 경기대회>로 평했었다.
 손수 키우신 예술의 천사들을 보내셔 부산을 일류명소로 되게 해주신 김정일장군,아시아-태평양시대로 불리우는 21세기에 아시아를 세계의 가장 앞선 대륙으로 올려 세우시는 장군이시다.
 그러니 온 겨레,전 인류가 부산시민과 더불어 그분을 그토록 존경하며 그분께 그렇듯 열렬한 감사를 올리고 있는것이다.

     통일의 도시

 평양응원단은 통일의 사절들이였다.
 14차 아시아경기대회는 시작부터 통일한마당으로 펼쳐 졌다.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아시아경기대회의 불길로 타번질 때 겨레의 가슴에 심어 진것은 무엇이였던가.백두에서 한나까지 조국은 하나라는 확신이였다.백두산을 떠나서는 조국도 통일도 없다는 의지가 7천만 민족의 심장을 달구었다.
 남북의 선수들이 <아리랑>의 노래속에 단일기를 추켜 들고 경기장에 입장할 때의 감격은 너무도 컸다.그것은 우리는 민족도 피줄도 언어도 하나,력사도 문화도 땅도 하나,둘로 갈라 져서는 살수 없는 유기체와 같고 둘을 합치면 더 큰 하나가 됨을 세계에 선포하는 장엄한 행진이였다.
 통일로 시작된 대회여서인가,경기장은 온통 통일열기로 끓어 번졌다.평양응원단은 그 통일마당의 주인공이였다.화해와 단합,교류의 전도사였다.노래도 통일노래,춤도 통일춤,응원도 남과 북이 따로 없는 <우리 선수 이겨라!>였다.평양응원단은 말 그대로 <6.15응원단>,<통일응원단>이였다.
 그래서 그들을 보며 통일꿈에 젖어 보려고 경향 전역에서 수많은 관객이 모여 들었다.이남의 중심이 서울이 아니라 부산인듯 싶었다.경기장의 매표는 시작하자 끝나고 응원단의 옆좌석은 초만원이였다.멀리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구입소동으로 망원경은 동이 날 지경이였다.그들을 보며 친북,애북의 감정이 고조됐고 통일에의 희망이 부풀었다.그들과 만남의 기쁨을 나누려 밤낮으로 찾아 간 시민들의 수는 헤아릴수 없었다.
 경기장에는 분단의 장벽이 없었다.북측응원단이 <조국!> 하고 웨치면 약속이나 한듯 남측관람석에서는 <통일!>하고 화답했다.북측좌석에서 <우리는!> 하면 남측좌석에서 <하나다!>라고 응수했다.남측,북측이 따로 없는 하나의 응원단,<하나>였다.<한겨레남북공동응원단>을 발족하고 <북응원단동우회>까지 결성한 이남이였다.
 북측선수단을 위해 인공기 120여장을 제작한 대구의 김호경씨,매일같이 평양꽃응원단이 거처하는 <만경봉-92>호 려객선을 바라보며 손풍금을 타주고 즐거움을 나눠 가진 리희안씨를 비롯한 다대1동,2동의 주민들,통일의 삶을 안겨 주는 북녘의 형제들과 어울려 <통일합창무대>를 열고 단일기를 흔들며 북측선수들을 격려한 시민응원단.그 감격적인 모습은 마치도 통일을 경축하는 전야제같았다.
 <이번 경기대회에서 이북응원단이 지핀 화려한 통일의 불길이 이남 전 지역에로 거세게 번져 가도록 앞으로도 열과 성을 다할것>이라는 부산시민응원단의 선언문,<만경봉-92>호가 정박했던 다대포항을 <통일아시아드공원>으로 조성하려는 부산은 정녕 통일도시였다.
 부산의 새로운 통일모습은 김정일장군의 자주통일사상이 안아 온 찬연한 현실이였다.
 오랜 세월 분단이 굳어 진 땅에 평양의 선녀들이 통일의 노래 안고 내렸다.김정일장군께서 통일무지개,통일오작교를 주시고 부산을 통일축제장으로 만드셨다.거기엔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기어이 통일을 이루실 장군의 의지가 뜨겁게 굽이쳤다.
 2000년 6월 상봉으로 새 세기 통일의 리정표를 세워 주시고 투철한 통일신념과 숭고한 겨레사랑,광폭의 도량과 대용단으로 또다시 랭각되던 남북관계를 급전환시키신 장군,평양,서울,금강산의 통일마당에서 세차게 일어 나는 통일열풍을 부산에로 이어 놓으셔 2002년 통일잔치의 한마당을 마련해 주신 장군이시다.
 미국이 몰아 온 반북광란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던 때 부산에서 <평화의 성화>가 타오를수 있은것은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의 덕분이였다.
 날과 달을 이으시는 거룩한 선군장정으로 북의 위력을 백방으로 다지셔 미국의 북침전쟁기도를 제압하신 장군,7천만 겨레를 전란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시고 민족의 안녕을 담보해 주시며 부산에 화해와 단합,평화와 통일의 비둘기가 날게 해주신 장군의 선군정치.
 여기에서도 이남이 이북의 선군정치덕을 보고 있는것이다.기실 북의 선군정치가 없었더라면 <한>반도엔 열백번도 더 전란의 참화가 휩쓸었을것이 아닌가.그럴진대 북의 선군정치가 없는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 대해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겠는가.
 통일련대의 한 인사는 <북이 외세의 지꿎은 위협속에서도 이번에 선수단,응원단을 파하는 배심을 가질수 있은것은 선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확실한 통일결실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격정을 터치기도 했다.
 부산의 이 새 모습에서 통일의 래일을 본다.
 남과 북이 맞잡은 손이 얼마나 굳세고 하나되여 웨치는 함성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절감한다.
 평양꽃응원단은 갔다.
 그러나 부산은 잊지 않는다.
 자주와 평화,화합과 통일,사랑과 희망을 두고 간 그들은 부산의 력사속에 소중히 간직돼 있다.
 <다시 만납시다!>,눈물속에 다진 그들과의 약속이 실현될 날은 멀지 않다.
 통일의 태양 김정일장군께서 계시고 6.15공동선언이 앞길을 밝혀 평양꽃응원단을 다시 만날 그날,조국통일의 날은 기어이 오리라.(끝)


<한민전> 당면투쟁구호 발표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에 의하면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중앙위원회 선전국이 미국의 무분별한 반공화국핵소동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설것을 호소하여 6일 당면투쟁구호를 발표하였다.
 구호는 미국의 대북핵소동을 저지파탄시키고 <한>미공조를 깨부시며 평화의 교란자 미국을 징벌하자고 호소하였다.
 또한 북미불가침조약체결제안을 지지환영하고 이북의 선군정치를 지지하고 따르자고 호소하였다.
 구호는 핵전쟁온상 양키강점군을 몰아 내며 미국의 대북핵소동 즉각 중단,<한>반도평화 수호,리회창일당 매장,<한나라당> 배격을 호소하였다.(끝)


조선외무성 대변인담화,글 인터네트 홈페지에 게재/핀란드 <코민포름>통보사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핀란드 <코민포름>통보사가 10월 31일 조선외무성 대변인담화의 전문과 통보사의 글을 인터네트 홈페지에 실었다.
 통보사는 홈페지의 글에서 조미기본합의문에 따라 미국은 조선이 자체의 핵계획인 흑연감속로의 가동을 동결하는 대신 2003년까지 경수로를 건설해 주며 그 기간에 중유를 제공해 주게 되여 있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리행한것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북조선의 <핵의혹>은 북조선의 영상을 흐리게 하기 위한 날조이며 군사적공격을 위한 부쉬정권의 구실이라고 까밝히고 국제사회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조선의 걌핵무기계획걎에 대해 소동을 피우는 서방어용수단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고 통보사는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