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민족교예는 인류문명의 려명기에 발생하여 수천년동안 독특한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나라의 곳곳에 그것을 증명하는 유적유물들이 많다.
최근에 발굴된 평양시 상원군 장리1호고인돌무덤(B.C.3천년기 전반기의것)에서 드러난 청동교예장식품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청동교예장식품은 서로 어깨를 겯고 원통우에 올라선 두 교예사가 한쪽 발목들을 서로 묶은 상태에서 손에 륜을 쥐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속도감과 조형미가 잘 살아나게 형상한것이다. 장식품과 함께 발굴된 교예공연시에 리용한 소리기재 청동방울은 이 시기의 교예가 단순한 손재주나 발재주정도가 아니라 중심재주와 손발재주를 결합하고 선률까지 배합한 높은 수준의 체력교예로 발전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체력교예와 동물교예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교예장면들이 반영된 평안남도의 강서군 수산리무덤벽화와 순천시 동암리무덤벽화 등은 고구려(B.C.277~A.D.668)시기의 우수한 교예수준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고려(918~1392)와 리조(1392~1910)시기에는 《불토하기요술》과 《칼삼키기요술》 등 신비감을 자아내는 새로운 요술종목들과 노끈매듭풀기,글자알아맞추기,돈재주와 같은 기능요술종목도 출현하였다.
오랜 력사를 가진 조선의 민족교예는 로동당시대에 와서 주체교예로 이름떨치며 자기발전의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오늘 조선의 교예는 여러가지 체력교예종목들과 동물교예,요술과 막간교예 등 교예의 모든 종류를 다 갖추고 높은 수준에서 발전된 세계일류급의 교예예술로 자랑떨치고있다.
5,000여년의 유구한 력사와 전통,민족의 슬기와 랑만이 비껴있는 교예는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북돋아주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