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의 교원, 연구사들이 고구려시기의 력사유적인 서산성(적두산성)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고증을 하였다.
산성은 지금까지 문헌자료로만 전해왔다.
16세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 이후시기의 력사문헌들에 의하면 산성은 《묘청의 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고려시기의 봉건관리였던 김부식 (1075-1151)에 의해 쌓아진것이다.
교원, 연구사들은 산성과 관련한 력사적사실에서 여러가지 의문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한 사업을 벌리였다.
문헌자료에 기초하여 평양시 만경대구역 선내동에서 산성을 찾아내고 2차례의 발굴을 통해 그것이 고려시기에 쌓은것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였다.
유적은 대동강과 보통강합수목에서 약 800m 떨어져있고 보통강에서 약 1,000m 떨어진 서산의 92.6m되는 고지를 주봉으로 하여 그 동남쪽의 일정한 면적을 포함하고있다.
성의 모양은 장방형이고 둘레는 2,170m이다.
서쪽은 서산줄기이며 동쪽은 평지를 이루고있어 전반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를 이루고있다.
성의 형식과 축조방법, 돌가공방법 등이 고구려시기의것과 일치하다.
형식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고로봉식산성에 가깝고 잘 가공한 4각추모양의 성돌(너비 26~31㎝, 높이 13~18㎝, 길이 31~41㎝)들과 그 재질은 응회암, 응회질사암, 안산분암 등으로서 대부분 평양성에 쌓은 돌과 같았다.
발굴지점들에서는 붉은색기와들과 질그릇쪼각들, 쇠활촉을 비롯한 고구려시기의 유물들이 나왔다.
이와 함께 성안과 성벽들에서 수많은 고려기와들도 발굴된 사실에서 산성이 고구려시기에 축조되여 고려시기에도 리용되였다고 보고있다.
유물들과 사료들을 통하여 산성은 평양에 수도를 정한 고구려가 그 방위를 철저히 하기 위해 평양성앞에 보조성으로 쌓은 성이라는것이 확증되였다.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있던 서산성(적두산성)의 발굴과 그 과학적고증은 고구려시기의 높은 축성기술과 당대의 력사를 연구하는데서 커다란 학술적의의를 가진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