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그 어떤 난관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정의의 위업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는것은 오랜 력사와 숭고한 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확고부동한 기질이다.
이 불굴의 기개와 과감한 공격정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승리에로 이끄신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민족의 정신적재부로, 넋으로 공고화되였다.
그러한 사료는 김일성동지께서 소집하고 지도하신 력사적인 요영구회의에서 찾아볼수 있다.
요영구유격구(중국 왕청현)는 1930년대 전반기에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곳이다.
당시 유격구에 대한 일제의 《토벌》과 봉쇄책동은 절정에 달하였다.
유격구들을 인간세상과 완전히 격페시켜 질식시키기 위해 《집단부락》정책과 《보갑제도》를 더욱 강화하였으며 《귀순공작》을 꾀하면서 혁명대오를 와해시키기 위한 비렬한 모략책동에 매여달리였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유격구를 보위하는데만 급급한다면 혁명투쟁을 통하여 키워낸 혁명력량을 보존할수 없을것은 물론 적들과의 싸움에서 피동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4(1935)년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였다.
회의에서 해방지구형태의 고정된 유격근거지들을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 진출하여 적극적인 대부대활동을 벌릴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것은 난관을 맞받아뚫고나아가는 투철한 공격정신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제시하실수 있는 방침이였다.
유격구해산조치의 정당성은 그후 조선혁명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전반적발전과정에 뚜렷이 실증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함으로써 혁명력량을 간도의 협소한 산악지대들에 몰아넣고 질식시키려던 적들의 기도는 완전히 좌절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적의 수적, 기술적우세를 과감히 타승해나갔으며 혁명의 불길을 조선과 중국 만주의 넓은 지대에로 확대하였다.
조선혁명사에 잊을수 없는 고장으로 새겨진 력사의 땅 요영구에 나래친 백절불굴의 공격정신은 오늘도 최후승리를 위한 천만군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