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23일은 조선국민회가 결성된지 96돐이 되는 날이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였다.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다.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결성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지원》의 사상을 내놓으시고 민족해방운동의 선각자로, 지도자로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였다.
1910년대 조선의 반일운동은 민족주의자들의 분렬책동과 사대주의적행위로 하여 쓰라린 실패를 면치 못하고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반일운동의 심각한 약점을 분석하시고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승리적으로 이끌어나가자면 튼튼한 혁명조직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절감하시였다.
꾸준한 준비사업에 토대하여 주체6(1917)년 3월 조선국민회의 결성을 선포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반제자주적인 립장이 투철한 혁명조직이였으며 그 조직이 매우 치밀하였다.
학교계, 비석계, 향토계와 같은 합법적인 외곽단체들로 철저히 위장되였고 국내각지에는 물론 외국에까지 조직이 뻗어있었다.
로동자, 농민, 교원, 군인, 상인, 종교인, 수공업자들을 비롯한 각계층이 망라되여있었다.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키며 반일독립운동의 단결을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에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평양시 장대재기슭에 위치한 학당골에 혁명사적지를 훌륭히 꾸리였다.
해마다 3월이면 선생님의 그날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 사적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