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918~1392년)의 수도였던 개성에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력사유적들이 많다.
송악산에 위치한 안화사도 그중의 하나이다.
안화사는 930년에 지었는데 처음에는 안화서원이라고 불렀다.
이 사찰이 세워지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건국 초기에 고려와 후백제사이에는 오래동안 싸움이 계속되고있었다. 그러다가 925년에 일시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져 서로 인질을 교환하였다.
후백제의 왕 견훤은 사위 진호를 고려에 보내고 고려의 왕 왕건은 사촌동생 왕신을 후백제에 보내였다.
그런데 진호가 6개월만에 병으로 죽자 견훤은 자기 사위를 고려가 죽인것으로 의심하고 왕신을 죽였다.
왕건은 동생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안화서원을 짓도록 하였다.
당시 안화서원은 작은 암자에 불과하였는데 1118년에 크게 확장하여 안화사라고 불렀다.
옛 기록에 의하면 《모든 사찰중에 안화사가 제일이다.》라고 하였고 고려의 문인 리인로는 자기의 저서에서 안화사에 대하여 《구조와 단청의 교묘함이 우리 나라의 첫째》라고 썼다.
대웅전과 오백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에 이르기까지 원상대로 개건된 안화사는 공화국의 문화유산보호정책에 의해 력사유적으로 관리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