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캄보쟈의 이전 국가수반이였던 노로돔 시하누크를 처음 만나주신 때로부터 4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애의 전기간 시하누크를 40여차례나 초청하시고 수백차례 접견해주시면서 그에게 참으로 고귀하고 다심한 은정을 부어주시였다.
주체54(1965)년 4월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반둥회의 기념행사에 참가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하누크와 첫 상봉을 하시였다.
오랜 세월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온 그를 지켜주고 지지고무해주시였다.
1970년 6월 반동들의 군사정변으로 국가수반직에서 밀려나 해외에 체류하고있을때 평양으로 초청해주시고 환대해주시였다.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자주 만나 난국을 타개할 방도도 의논해주시였다.
반미구국항전에서 승리한 캄보쟈로 돌아갔던 시하누크가 집권세력의 학대와 랭대만을 받다가 또다시 망명의 길에 올랐을 때에도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시였다.
아무런 공직도 없는 그를 이전과 다름없이 친근한 형제로, 친우로, 전우로 불러주시였으며 하루빨리 자기 조국에서 합법적지위를 차지할수 있도록 도와주시였다.
그에게 조선에서의 통일전선경험을 들려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세력들은 단결해야 한다고 하시며 그 실현에로 떠밀어주시였다.
외국의 벗들을 만나실 때마다 캄보쟈는 곧 시하누크이고 시하누크는 곧 캄보쟈라고, 자신께서는 시하누크를 지지한다고 말씀하군 하시였으며 그가 벌리는 투쟁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해주시였다.
하여 시하누크에 대해 편견과 오해를 가졌던 사람들이 정확한 인식을 가지였고 마침내 그의 애국활동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이 마련되게 되였다.
이것은 숭고한 덕망을 천품으로 지니신 수령님특유의 의리의 세계가 낳은 결실이였다.
시하누크는 캄보쟈에 잠정민족정부가 수립되고 자기가 국가원수로 선거되였을때 제일먼저 수령님을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는 고매한 인품과 넓은 포옹력, 뜨거운 인정미를 천품으로 지니신 국제주의적의리의 최고화신이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