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력사의 갈피에는 리보익녀사(1876.5.31-1959.10.18)의 고결한 생애도 수놓아져있다.
녀사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를 반대하여 굴함없이 싸우시였으며 침략자들의 가혹한 탄압과 행패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며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길에 자제분들을 주저없이 내세우신 강의한 분이시였다.
녀사께서는 애국의 한길에서 갖은 고초와 마음고생을 달게 여기며 자손들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우시였다.
맏아드님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였다.
녀사께서는 맏손자님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증손아, 이제는 아버지가 메고있던 짐을 네가 메야겠구나. 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 나나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해도 좋으니 조선을 독립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거라.》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만일 그때 할머니가 조선독립이 아니라 앞으로 부자가 되거나 출세할 생각이나 하라고 하였더라면 자신께서는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것이라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리보익녀사께서는 강권앞에서도 휘여들지 않으시였고 적들에게는 추상같으시였다.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귀순공작》을 대대적으로 벌리면서 녀사까지 끌어내다가 백두산일대를 돌아치며 온갖 고생을 다 시키였다.
적들이 총대로 몸을 쿡쿡 찌르며 손자의 이름을 부르라고 강요할 때마다 녀사께서는 매번 《나는 그런 미친 소리는 할줄 모른다. 네놈들이 나를 죽이고 무사할줄 아느냐. 우리 손자의 총알을 받고싶거든 어디 네놈들 하고싶은대로 해봐라!》하고 맞받아 위협하군하시였다.
리보익녀사께서는 직업적인 혁명가가 아니였고 학교를 다닌적도 조직적인 교양을 받은적도 없으시였다.
그런데도 적들과 그처럼 당당하게 대결하고 매사에 처신을 대바르게 하실수 있은것은 그 밑바탕에 열렬한 애국심과 정의감이 강하고 불의와는 타협할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력이 있었기때문이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