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지난 세기 50년대 조선반도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도발자는 다름아닌 미국이다.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후 남조선을 강점하고 《군정통치》제도를 수립한 후 전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전쟁도발책동에 광분하였다.
특히 38°선일대에서의 무장도발을 매일과 같이 감행해나섰다.
여기에는 북침전쟁의 총알받이로 써먹을 남조선괴뢰군의 실전능력을 키우고 공화국 경비대의 방어를 약화시키며 정세를 첨예하게 만들어 전쟁도발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자는 음흉한 속심이 깔려있었다.
1945년 9월부터 1946년말까지 106차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군사정찰과 주민들에 대한 략탈, 살해, 랍치, 주민부락들에 대한 방화 등 악랄한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1947년에 들어서면서 무장도발을 더욱 확대하여 전쟁접경에로까지 치닫게 하였다.
괴뢰전투경찰대, 괴뢰국방경비대들을 내몰아 주로 38°선이북의 중요한 고지들에 대한 점령을 노린 454차에 달하는 각종 무장도발을 벌리였다.
1948년부터는 도발행위를 더욱 적극화하였다.
이 시기 6,030명의 무장인원을 동원한 930여차의 도발이 있었다.
또한 1,074명의 테로단을 38°선이북지역에 침투시켜 이르는 곳마다에서 여러가지 암해책동을 감행하게 하였다.
1949년에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괴뢰군의 4개 사단과 1개 련대를 분계선지역에 진출배치하는 한편 전투경찰대들도 더 증강배치하였다.
자료적으로 볼때 1949년에 감행된 무장도발은 2,617건, 여기에 참가한 인원수는 6만 7,398명, 공격종심은 2~17㎞, 《특수부대》들의 행동종심은 60㎞정도였다.
해상과 공중에서도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69차의 해상도발과 79차의 공중도발이 있었다.
1950년에 들어와서 38°선무장도발은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였다.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1950년 1월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기간에 무려 1,147차의 무장도발을 일으켰다.
이처럼 미제의 38°선무장도발은 그 규모와 지속성, 반복성 등을 놓고볼 때 명백히 전면전쟁을 위한 계획적인 군사행동이였으며 조선전쟁의 전주곡이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을 노린 38°선무장도발을 조직지휘한 주범으로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