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전에 자신께서 편안하면 인민이 고생하게 되고 자신께서 고생하면 인민이 편안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제일먼저 새벽이슬을 맞으시며 수많은 농장들을 찾으시였다.
인민을 잘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내세우는것은 한평생 포전길을 걸으시며 농사일로 마음쓰신 그이의 념원이였다.
비내리는 이른새벽과 눈오는 깊은 밤에 찾으시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농업생산을 집약화하고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농사를 지어 알곡소출을 부단히 높이도록 이끌어주기도 하시였다.
자신의 저택시험포전에서 농작물을 손수 가꾸신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시고 씨뿌리기와 모내기, 품종배치가 걱정되시여 수천리 밤길을 달리신 이야기는 오늘도 인민들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어느해 가을날 한 농장의 농사작황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 작업반장에게 강냉이를 몇이삭 따오라고 하시였다.
날이 어두워져서 강냉이이삭들이 잘 보이지 않으시자 승용차의 전조등을 켜라고 이르시고 그 불빛에 실한 강냉이이삭을 하나하나 살펴보시고 만져보시였다.
어둠짙은 포전에서 떠나실줄 모르시는 수령님께 일군들이 떠나실것을 거듭 말씀드렸을 때 이렇게 기쁜 날이 어데 있는가, 이렇게 잘된 강냉이밭머리에서 인민들을 잘살게 할 의논들을 하고있는데 밤을 샌들 일이 있는가고 말씀하시였다.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시기 위해 주체82(1993)년 3월에만도 전례없는 규모의 농업부문 일군협의회를 근 10차례나 지도하여주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