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25-1953.7.27) 조선에서 후방인민들의 생활은 안정되여있었다. 미제의 야만적폭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있었어도 굶어죽은 사람, 얼어죽은 사람은 없었다.
이 희한한 현실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전시에도 인민들의 생활안정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세심한 령도가 안아온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0(1951)년 1월 2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결론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몇가지 과업》에서 전시조건이라고 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무관심하는 경향을 철저히 극복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그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내각결정과 지시로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 가족들에 대한 식량공급량을 늘이도록 해주시고 국가적으로 그들에게 정상적인 식량공급외에 눅은 값으로 보충미를 더 공급하도록 하시였다.
농민들이 나라에 바치지 못한 현물세와 관개시설사용료, 반환하지 못한 대여곡마저 전량을 면제해주며 그들에게 모자라는 식량과 종곡을 국가에서 대여해주도록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막대한 국가자금과 자재로 집을 잃었거나 파괴당한 사람들에게 집을 새로 지어주거나 보수해주며 해당부문에서 주민들에 대한 생활필수품공급사업을 개선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국가에서 맡아 키울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평양시를 비롯한 각 도에 애육원, 초등학원, 유자녀학원 등이 일떠서 1951년 4월 1일부터 문을 열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부상당한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구급치료를 해주도록 하시고 중앙으로부터 리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위생방역체계를 세워주시였다.
그이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반적무상치료제실시를 위한 준비사업의 일환으로 보건일군들이 대대적으로 양성되고 병원과 진료소들이 복구건설되였으며 의료기구와 의약품생산이 늘어났다.
이에 기초하여 1953년 1월부터 전반적무상치료제가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에서 일제히 실시되게 되였다.
준엄한 전시에 베풀어진 김일성동지의 은정은 조선인민들이 무비의 헌신성, 용감성,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할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