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 5만 1,200여리의 로정을 이어 1,000여개의 단위들을 찾으시여 인민군장병들,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시며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탁월한 전략전술,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미제가 일으킨 3년간의 전쟁은 창건된지 불과 2년도 안되는 공화국과 백수십년의 침략력사와 수적, 기술적우세를 자랑하는 미제와 15개 추종국가군대 그리고 남조선괴뢰들과 일본군국주의자들과의 치렬한 정치, 군사적대결이였다.
1950년 6월 25일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을 불의에 침공하였다.
6월 25일 적들의 무력침공을 단호히 좌절시키고 신속한 반공격으로 넘어갈데 대한 전쟁제1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력사적인 방송연설에서 미제와 그 주구들을 우리 강토에서 쓸어버리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전당, 전군, 전민이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39(1950)년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의 한달사이에 여러차례 단행하신 서울현지시찰은 전쟁제1계단의 전환적국면을 마련한 력사적인 로정이였다.
수수한 야전용승용차를 타시고 7월중순 위험천만한 림진강철교를 한치한치 건너 서울의 전선사령부에 도착하신 수령님께서는 쌓이신 피로도 푸실사이없이 대전포위작전의 전략적구상을 펼쳐주시였다.
7월말 또다시 총포탄이 울부짖는 화선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최전선 수안보에까지 나가신 수령님께서는 신속히 락동강을 강행도하하여 마산, 대구, 영천, 포항계선의 적을 소멸할데 대한 작전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어 8월 9일에는 서울로 나가시여 남반부를 완전해방하기 위한 승리의 지름길을 밝혀주시였다.
5,600여리의 간고한 전선길을 헤쳐가신 그이의 불면불휴의 헌신에 의해 인민군대는 전쟁이 시작된지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에 남조선지역의 90%이상, 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는 기적을 창조할수 있었다.
1950년 9월에 이르러 전선의 형편은 급변하였다.
증강된 대병력으로 적들은 락동강계선에서 발악적인 《총공세》를 시도하는 한편 인천지구에서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적아력량관계의 변화와 전선형편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수령님께서는 9월중순 적들을 최대한 지연시켜 인민군주력부대들의 일시적인 전략적후퇴를 보장하는 한편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할데 대한 전쟁제2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맹산군 옥천면(당시)에 최고사령부 지휘처를 정하시고 후퇴의 성과적보장을 지휘하시는 한편 인민군련합부대들로 제2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작전적구상을 펼치시였다.
인민군대의 반공격준비와 적들의 약점,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분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제3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310여개 단위를 찾아 1만 2,800여리의 로정을 이어가시였다.
11월 4일부터 12월 18일까지 고산진(당시)에서 새로운 반공격작전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여 전쟁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으시였다.
1950년 11월말 전전선에 걸쳐 결정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고산진을 떠나 700여리 밤길을 헤쳐 28일 동창군 대유동에 또다시 나가시여 청천강과 장진호반, 청진, 함흥일대의 적의 기본집단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작전들을 조직지휘하시였다.
인민군련합부대들과 제2전선부대들은 맹렬한 공격으로 적들의 《크리스마스공세》를 여지없이 분쇄하고 공화국북반부전지역을 해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2월중순 강계시 연풍동에서 내각 제30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신데 이어 장강군 향하땅에로 불멸의 자욱을 새겨가시였다.
21일부터 23일까지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현정세와 당면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와 결론을 하시여 자체의 힘으로 반공격전에서 쟁취한 승리를 공고히 하며 당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기 위한 강령적인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주체40(1951)년 1월부터 최고사령부를 건지리(당시)에로 옮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전기간 200여차에 걸쳐 당과 군대, 국가의 중요회의들을 지도하시고 최고사령부에서 전선으로, 전선에서 또 후방으로 쉬임없이 이어가시며 군대와 인민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1951년중순 전쟁의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전쟁제4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지혜산과 순갑리, 불당골을 비롯하여 전선과 후방의 600여개에 달하는 전투장들과 공장, 농촌들을 찾으신 그이의 3만 1,600여리에 달하는 행로는 전쟁의 최후승리를 안아온 불멸의 장정이였다.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951년 11월초에 이르러 적들의 《추기공세》는 완전히 격파되고말았다.
미제가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여 《영예로운 담판》을 달성하려고 책동하고있을 때인 1952년 6월에는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며 후방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수령님께서는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또다시 오르시였다.
1952년 가을에는 금강군 순갑리에 있는 전선사령부와 속사리에 있는 련합부대를 시찰하시여 조선식의 전법으로 적들의 《김화공세》를 격파하기 위한 작전적방침들을 밝혀주시였다.
1953년 2월에만도 동부지구의 마식령과 북부지구의 명문고개를 비롯한 눈덮인 산과 령길들을 쉬임없이 넘나드시며 최전방부대 용사들과 자강도, 평안남도안의 로동계급을 전쟁의 최후승리에로 총궐기시키시였다.
5월초에는 몸소 정전담판장에까지 나가시여 적들의 숨통을 거머쥐고 항복서를 받아낼 묘안과 방도를 밝혀주시고 결정적승리를 안아올 3차례의 강력한 반타격전을 진두지휘하시였다.
주체42(1953)년 7월 27일 드디여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가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는 시각이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의 땅(전승혁명사적지)에서 정전협정조인문건을 최종적으로 검토하신 후 비준을 하시였다.
참으로 3년간의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는 김일성대원수님의 탁월한 사상과 전략전술의 승리, 열화같은 인민사랑의 대승리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