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올해는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과 남조선집권세력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맞으며 《잊혀진 승리》니 뭐니 하고 떠들어댔다. 그러면서 조선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정전협정체결을 저들이 이룩한 《승리의 열매》인것처럼 미화분식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1일부 《로동신문》은 개인필명의 론설에서 그러나 아무리 선전광고를 해도 정전협정에 비낀 미국의 패배상을 절대로 감출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조선전쟁시기 정전문제를 먼저 제기한것은 미국이였다.
우리 인민군대의 재진격에 의해 격퇴당하기 시작한 미제는 패배를 수습하기 위한 출로를 모색하였다. 미국무성이 정전문제를 들고나왔다.
미국은 《승리자의 지위》에서 정전을 실현해보려 하였다. 미제는 1951년 4월초부터 전선에서 《전술적돌파》의 간판밑에 대규모병력으로 공격작전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군대의 강력한 반공격에 의해 38°선이남으로 쫓겨났다. 《승리자의 지위》에서 정전문제에 달라붙으려던 미제의 기도는 산산이 부서졌다.
미국은 제3국을 내세워 우리 나라와의 간접적인 접촉을 시도하였다. 정전을 구걸하는 패전자로서의 몰골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막다른 골목에 빠져든 미제는 별수없이 1951년 6월 30일에 방송을 통하여 《유엔군》사령관 릿지웨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정전담판을 할것을 제기하였다.
인민군부대들은 1953년 7월 13일부터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에게 강력한 군사적타격을 가하였다. 급해맞은 미국은 다시 정전담판장에 끌려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국은 정전담판의 모든 토의항목들에 완전히 동의하고 우리앞에 최종적으로 굴복하고말았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조선정전협정에 관한 조인식이 진행되였다.
정전협정은 우리의 주장과 요구대로 체결되였다. 조선정전협정문은 미국이 우리에게 바친 항복서였다. 결국 조선전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승리로 끝났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