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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수 없는 진실-일제의 과거범죄
(평양 8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일본의 과거범죄를 립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드러나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일본의 우경화책동이 날로 강화되고있는 때에 속출되는 증빙자료들은 감출수 없는 일제의 범죄, 변함없는 일본의 본성을 다시금 낱낱이 폭로하고있다.

지난 6일에 공개된 당시 일본군《위안소》에서 일하던 한 조선사람이 쓴 일기를 통해 일제의 성노예만행이 국가적범죄임을 립증하는 새 자료들이 나왔다.

그에 의하면 1942년 5월 당시 일제의 남방파견군사령부는 조선주둔군사령부에 성노예모집과 관련하여 협조할것을 요청하였었다.

그에 따라 수많은 녀성들이 부산항을 통해 침략전쟁터로 끌려갔으며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였다.

일본군《위안소》가 일본군의 완전통제속에서 운영되였다는 내용도 일기에 밝혀져있다.

각지에 꾸려진 일본군《위안소》들에서는 《수입보고서》, 《영업일보》 등을 정기적으로 소속부대에 제출하였으며 경영자금은 군에서 대주었다. 《위안소》이동도 철저히 일본군부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였다고 한다.

일제의 성노예범죄와 관련한 자료들은 이뿐이 아니다.

며칠전 남조선 《KBS》방송이 전한데 의하면 1945년 당시 태평양지역련합군 총사령관이였던 맥아더가 일제의 성노예강제동원사실을 기록한 《기밀문서》를 작성했던것으로 밝혀졌다.

1945년 11월 15일 맥아더의 이름으로 련합군총사령부가 작성한 《일본군위문시설》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일본군사령부가 조선경내에 있던 일본인업자들을 동원하여 조선녀성들을 먄마 등지로 끌어갔다고 기술하고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 특대형의 성노예범죄를 부정하면서 그에 대한 사죄, 배상을 외면하고있다. 최근에는 《당시 상황에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것이였다.》고 저들의 범죄행위를 뻔뻔스럽게 정당화하고있다.

일본의 망동이 조선인민을 비롯한 아시아인민들의 격분을 자아내고있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간또대지진당시 조선인대학살만행과 관련한 자료들도 새로 밝혀지고있다.

지난 7월 22일 남조선의 《1923한일재일시민련대》 상임대표 김종수가 인터네트신문 《통일뉴스》와 가진 기자회견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1923년 간또대지진을 계기로 조선인대학살만행이 감행되였던 도꾜와 지바, 사이다마, 요꼬하마의 현장들을 지난 7월 2일부터 6일까지 조사한데 대해 언급하였다.

당시 이 지역들에서 일본정부가 군대와 경찰, 《자경단》 등을 내몰아 조선인대학살만행을 저질렀다는것이 다시한번 확증되였다고 피력하였다.

특히 사이다마는 지진피해지역이 아니였지만 《계엄령》이 공포되고 《자경단》이 조선사람들을 수많이 죽였다고 폭로하였다.

일본당국이 저들의 살인만행을 합법적인것으로 하기 위해 조선사람들이 방화했다느니, 우물에 독약을 쳤다느니 뭐니 하는 류언비어를 사실로 만들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으며 그에 따라 대대적인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고 규탄하였다.

이번 현장조사를 통해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 특히 조선사람들의 팔과 다리가 완전히 잘리고 목이 잘린 사진자료들도 새로 발견되였다고 밝혔다.

2003년 일본변호사련합회가 당시 일본수상에게 《국가가 이 학살의 주범이다. 또 군대가 학살했다는것이 이미 기존자료를 통해 다 드러났다. 따라서 일본이 사죄하고 응당한 책임을 다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지금도 차별적인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조처해달라.》고 권고하였지만 일본집권층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고 그는 단죄하였다.

간또대지진때의 조선인대학살만행 9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지난 3일 도꾜에서 진행된 특별강연회에서도 새로운 폭로자료들이 나왔다.

센슈대학 교수 다나까 마사따까는 강연에서 조선인학살이 도꾜에 이어 지바, 사이다마, 도찌기, 군마 등지로 확대되였다고 하면서 특히 조선인학살의 도화선이 된 류언비어는 일본내의 경찰, 현청, 해군의 무선을 통해 류포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는커녕 오늘까지 정확한 희생자의 수조차 밝히지 않고있다고 그는 단죄하였다.

이날 강연회에서 발언자들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와 오늘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고 하면서 일본사회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조선인차별사상, 극단한 민족배타주의를 적극 비호조장하고있는 일본정부에 대한 분노를 피력하였다.

조선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인민을 노예화하기 위한 일제의 악행을 고발하는 자료들도 새로 드러났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알려진 《아리랑》을 외곡한것과 관련한 새 자료들을 지난 14일 남조선 《KBS》방송이 폭로하였다.

방송은 일본이 《을사5조약》을 날조하기전부터 《아리랑》을 합병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려고 가사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외곡해왔다고 밝혔다.

1905년 일본의 한 기관이 발행한 사진첩에 실린 《아리랑》의 가사는 로씨야와 같이 큰 나라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조선사람들은 합병에 응하라는 내용으로 바뀌여있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의 오끼따 겐조라는자가 쓴 책도 《아리랑》을 악의적으로 외곡하였다.

이자는 국가일에 대한 무관심과 무정함, 은둔과 무사안일을 《아리랑주의》로 표현하였는가 하면 《아리랑》이 조선인의 두뇌를 어지럽히고 비굴하게 만드는데 큰 위력을 가진 노래라고 헐뜯어댔다.

방송은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조선사람들속에 렬등감과 패배의식을 주입시키고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말살하겠다는 의도였다고 규탄하였다.

력사적사실들은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책동이 얼마나 집요하고 악착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일본의 과거범죄는 그 국가적규모와 조직성에 있어서, 내용과 방법의 잔혹성에 있어서 미국의 인디안살륙전이나 히틀러도당의 유태인멸살행위 등 력사에 악명떨친 제반 만행들을 무색케하는 전대미문의것이다.

지난 한세기동안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끼친 인적, 물질문화적 및 정신도덕적손실과 우리 인민의 원한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채로 바쳐도 시원치 않을만큼 피맺힌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도리여 《과거지사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력사란 100년정도 지나가야 진실을 알수 있다.》는 사무라이식력사관이 대두하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군사파쑈통치가 《합법》이였다는 오만방자한 강변까지 터져나오고있다.

청산하지 않는 과거는 반복되며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과거청산이 없는 한 일본에 대한 력사의 고발은 계속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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