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패당에게 유인되여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공화국으로 돌아온 주민들과의 좌담회 진행
(평양 9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괴뢰패당의 유인랍치책동에 의하여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주민들과의 좌담회가 9월 30일 고려동포회관에서 진행되였다.
단천시 동암동에 살던 박진근(49살), 혜산시 련봉1동에서 살던 장광철(33살)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좌담회참가자들은 먼저 괴뢰패당의 모략에 걸려 남쪽으로 끌려가게 된 경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박진근은 돈에 눈이 어두워 중국으로 넘어가 떠돌아다니던중 괴뢰정보원의 마수에 걸려 2011년 10월 남조선으로 끌려가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썩어빠진 남조선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지난 7월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강조하였다.
장광철은 괴뢰정보원과 결탁된 거간군놈들의 간계로 지난해 3월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얼마전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민들을 유인랍치하여 남조선에 끌어가기 위한 괴뢰패당의 모략책동이 날로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는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박진근은 돈을 벌어보자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2011년 5월 중국으로 비법월경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집저집 숨어살며 헤매이던 어느날 화룡시에서 산다고 하는 김효성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를 걱정해주는척 하면서 훌륭한 안식처를 마련해주겠다고 귀맛좋은 말을 늘어놓는것이였다.
며칠후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이 《여기서 이렇게 숨어살지 말고 남조선으로 가라. 거기에 가면 마음편히 잘 살수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차마 역적으로 될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조선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자는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는 말이 《네가 여기에 몰래 와서 숨어사는 사실이 들짱났다. 이제 공안국에서 너를 잡으러 올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으로 끌려가 감옥신세를 면할수 없다.》고 하는것이였다.
겁에 질려 어쩔바를 몰라하는 나에게 놈은 기다렸다는듯이 후회하지 말고 결심을 잘하라고 공포를 불어넣는것이였다.
결국 회유와 강박에 굴복하자 그놈은 자기가 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시장에 나가 옷들을 사준다, 식당에 데려간다 하며 극성을 부리였다.
알고보니 그놈은 중국에서 우리 주민들을 유괴하여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을 전문으로 하는 괴뢰정보원의 끄나불이였다.
며칠후 나는 남조선에 가면 그 대가로 돈을 얼마만큼 내야 한다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김효성이 소개해준 정체모를 놈들에게 인계되였다.
놈들은 나를 끌고 움직일 때마다 머리를 쳐들고 두리번거리지 말라, 누가 말을 시켜도 일체 응대하지 말고 귀머거리시늉을 하라, 일을 그르치는 날에는 모든것이 끝장이다고 하며 강박하였다.
그리고는 수시로 손전화기를 바꾸어가며 어디와 계속 련계를 취하면서 단속초소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주로 야밤에만 이동하였다.
도적고양이처럼 움직여 일정한 장소에 도착하면 또다시 정체모를 놈들에게 나를 인계하였다.
이렇게 나는 라오스와 타이를 거쳐 저주로운 남조선에 끌려가게 되였다.
장광철은 몇해전에 불법월경한 누이가 돈을 주겠다고 하니 같이 가자는 낯모를 사람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를 따라서게 되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해 1월 어느날 이른 새벽 그자와 함께 압록강대안의 어느한 곳에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온다는 누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점점 초조해하자 그자는 날이 밝으면 위험하니 얼른 강을 건너가서 누이를 만나보고 다시 돌아오자고 재촉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자를 따라나섰다.
국경을 넘어선 그자는 한참동안이나 여기저기를 살피는척 하더니 누이에게 무슨 사정이 생긴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는 돌아가자고 해도 늦었다, 이왕 넘어온김에 누이를 만나보고 다음날 돌아가자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하는수없이 그자를 따라 길림시의 어느한 지역에 도착하였는데 놈은 나에게 손전화기를 주면서 누이한테서 오는 전화이니 받으라고 하는것이였다.
전화내용인즉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안내자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라는것이였다.
내가 영문을 몰라하자 그자는 《누이는 지금 남조선에서 잘 살고있다. 남조선에 가면 집도 돈도 주고 생활조건도 다 보장해준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조선으로 가자고 꼬드기는것이였다.
순간 너무도 기가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남몰래 집을 떠나오면서 두고온 안해와 한살짜리 아들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였더니 그자는 이제는 늦었다, 비법월경자인 당신을 법기관에서 가만 놔두겠는가,처자야 앞으로 데려오면 되지 않는가고 하였다.
사상과 신념이 떨떨하다보니 남조선에 가면 잘 살수 있다는 환상과 공화국에 돌아가야 법적제재를 받을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모대기던 나는 누이가 있는 남조선으로 가기로 작정하였다.
그후 나는 남조선까지 무사히 가게 해주는 대가로 얼마만한 돈을 1년내에 물며 이것을 어길 때에는 리자가 붙는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수표한 다음 그것을 들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는 이놈저놈에게 끌려 타이의 《난민수용소》에까지 가게 되였다.
괴뢰패당의 이런 유인랍치행위에 걸려 나는 남조선으로 끌려갔다.
내가 《탈북》을 도와준다는자에게 왜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하는가고 물은적이 있다.
그놈이 하는 말이 너와 같은 사람들을 북에서 빼내여 남쪽에 보내면 북의 영상을 흐리게 하기 위해 몸살을 앓는 사람들에게서 묵돈을 받을수 있기때문이라고 지껄이는것이였다.
지금 공화국의 북부국경일대에는 이러한 인신매매거간군들이 수많이 돌아치며 우리 주민들을 노리고있다.
최근에는 각성된 우리 주민들이 저들의 유인랍치행위에 잘 걸려들지 않자 먹이감을 놓고 서로 물고 뜯는 추태까지 부리고있다.
계속하여 그들은 썩어빠진 남조선사회의 실상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장광철은 남조선에서 보낸 1년이라는 기간은 악몽의 나날이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괴뢰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정보원과 《하나원》이라는데 가두어놓고 3개월 지어는 6개월동안 조사놀음을 벌린후 내놓는데 그 순간부터 먹고살기가 정말 막막하다.
더우기 괴뢰정보원 요원들과 인신매매거간군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갈 때 그 비용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계약서를 쓰게 하는데 유괴된 사람들은 그것때문에 엄청난 빚단련을 받게 된다.
남조선에 끌려간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
임금은 남조선로동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여기저기 헤매다가 춘천의 어느한 아빠트건설장에서 휘틀을 조립하는 일감을 겨우 잡은적이 있다.
그런데 《팀장》이라는자는 나를 보고 기술이 없다, 같이 일할수 없다고 생트집을 걸더니 나중에는 내쫓는것이였다.
결국 그 일감마저 떼우고말았다.
박진근은 《탈북자》라고 하여 끝내 직업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남조선사람들도 직업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탈북자》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난해 어느 조사기관의 자료를 보니 서울시만 해도 실업자가 최근 5년동안 거의 20%나 증가하였다고 써있었다.
특히 남조선에서 청년실업률이 커다란 사회적골치거리로 되고있는데 대학졸업증은 《실업증》이라는 말로 통용되고있다.
남조선에 끌려간 사람들은 돈도 없고 일자리도 얻을수 없기때문에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수 없다.
장광철은 남조선땅에 발을 들여놓기전부터 갖은 랭대와 구박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타이의 《난민수용소》에 갇혀있을 때 23살쯤 나보이는 괴뢰대사관 녀직원이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선채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서라.》고 고함을 지르는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지난해 8월 주민등록때문에 경기도 수원시 경찰서에 갔을 때였다.
나이가 50대 중반쯤 보이는자가 나를 마뜩지 않은 시선으로 한참 쳐다보더니 《야, 이 자식, 여긴 왜 왔어? 여기가 너같이 가족을 버리고 온 놈들을 처리하는 쓰레기하차장인줄 알아?》라고 쌍욕을 퍼붓는것이였다.
언제인가는 뻐스에 올라 옆사람에게 길을 물어본적이 있는데 대뜸 보지 못할것을 본것처럼 대답은커녕 순간에 머리를 돌려버리는것이였다.
그리고는 함께 가던 사람에게 《탈북자》새끼들은 대상하지 않는것이 상책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탈북자》들은 어디 가나 참을수 없는 천대와 수모를 받는다고 하면서 박진근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절망에 빠진 《탈북자》들은 범죄와 자살의 길로 굴러떨어지고있다.
내가 아는 한성남이라는 사람은 남조선에 끌려온지 1년도 안되였는데 먹고 살기가 막막하여 절망속에 몸부림치다가 아빠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도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으며 남조선보수언론도 이에 대해 외면하고있다.
그것은 저들이 유괴한 사람들의 비참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 괴뢰들이 떠드는 《난민구제》와 《인권보호》의 허울이 벗겨지는것과도 관련되지만 《탈북자》들을 들개만큼도 여기지 않는 남조선사회의 풍조와도 관련되여있다.
장광철은 남조선사회는 유인랍치되여 끌려간 사람들뿐아니라 남조선주민들에게도 암흑의 사회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남조선의 절대다수 인민들은 괴뢰패당의 악정으로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있다.
남조선언론이 공식보도한데 의하더라도 지금 생활이 경각에 다달은 절대빈곤층을 비롯하여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빈곤층이 1,000여만명에 달하고있다.
실업자가 해마다 늘어나 거리와 골목들에 득실거리고 낮은 임금에 쪼들리는 반실업자대군이 도시들을 휩쓸고있다.
전도가 유망하다고 하던 한 녀성작가가 먹다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달라는 글을 써놓고 죽고 국제체육경기에 선수로 나갔던 체육명수가 생활고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는것이 남조선의 비참한 현실이다.
색다른 음식이 하나 생겨도 옆집문을 두드리고 좋은 일,어려운 일도 함께 나누며 도와주는 우리 공화국과는 너무도 판이한 세상이다.
좌담회참가자들은 괴뢰패당이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을 미친듯이 벌리고있는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것은 우리 공화국의 대외적영상을 흐리게 하고 일심단결을 파괴해보려는 불순한 기도에 따른것이라고 까밝혔다.
장광철은 괴뢰패당이 떠드는 반공화국인권소동은 거짓과 날조, 모략으로 일관되여있다고 강조하였다.
지난해 9월 남조선에서 《북인권사진전》이라는것이 열렸는데 사진은 한장도 없고 모두 가정과 억측으로 날조한 그림들뿐이였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이를 주최한 《민주화네트워크》기획실장이라는자가 《이것을 보면서 북주민들이 어떻게 고통받고있는지를 리해하기 수월할것이다.》고 떠벌인데 대해 격분을 표시하였다.
박진근은 올해 1월 괴뢰보수언론인 《조선일보》가 《북의 마약거래의 현장을 촬영했다.》고 하면서 만든 기록영화가 완전한 거짓이라는 사실이 남조선언론들에 보도된적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흐리게 하는데 악용된 이 영화에서 마약이라고 한것은 조미료로 만든것이며 공화국에서 마약을 가지고왔다는 《탈북자》는 돈을 받고 촬영에 동원된 중국교포였다는것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장광철은 괴뢰정보원놈들이 한쪽으로는 유인랍치하여 남조선으로 끌어간 사람들을 반공화국모략책동에 써먹고 다른쪽으로는 《탈북자간첩》사건이라는것을 련이어 조작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반목과 적대,불신과 대결분위기를 고취하고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 2월 남조선에서 《탈북자공무원간첩》사건이라는것이 터져 떠들썩했다.
《탈북자》로 위장해 남조선에 들어와 몇년동안 서울시에서 계약직공무원으로 일하던 유 아무개라는 사람이 《탈북자》들의 정보를 북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유 아무개를 《간첩》이라고 고발한 증인은 뜻밖에도 그의 녀동생이였다.
지난 4월말 오빠를 《간첩》이라고 고발한 녀동생이 기자회견을 하는것이 TV를 통해 나왔다.
그 녀성은 자기는 2012년에 남조선에 끌려온 《탈북자》인데 괴뢰정보원 직원들로부터 《오빠가 간첩이라고 해주면 남조선에서 잘 살수 있게 해주겠다.》는 유혹과 강압에 못이겨 허위진술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고 폭로하였다.
괴뢰정보원놈들은 저들이 유인랍치한 사람들이 조국과 인민앞에 두번다시 죄를 짓게 함으로써 영영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비렬하게 책동하고있다고 박진근은 까밝혔다.
그는 《CD 한장이 몇백발의 폭탄보다 낫다.》고 떠들면서 놈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고 부패와 타락을 설교하는 출판선전물들과 전자매체들을 《탈북자》들을 리용하여 우리 공화국에 들여보내기 위해 날뛰고있다고 말하였다.
좌담회참가자들은 저주로운 남조선사회를 박차고 그리운 조국의 품을 찾아오게 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박진근은 공화국의 품에 안긴 사람들의 기자회견소식을 충격속에 접하고 벌을 받더라도 조국으로 돌아갈것을 결심하였지만 남조선괴뢰들이 꾸며낸 거짓말에 주저하고 동요하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던 지난 6월 TV에서 괴뢰패당의 유인랍치행위로 남조선에 끌려갈번 했던 청소년들의 좌담회소식을 듣고서야 공화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잘못되였다고 한 말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고 하였다.
자기를 돌려세워보려는 담당형사의 회유에 개같은 세상에서 더는 살고싶지 않다, 내가 고향으로 가는게 잘못인가고 단호하게 면박을 주었으며 그후에도 계속되는 방해책동을 뿌리치고 꿈에도 그리던 공화국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된데 대하여 말하였다.
장광철도 인신매매거간군놈들에게 걸려들어 남조선으로 갔지만 언제한번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처자를 잊은적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여난지 넉달밖에 안되는 아들애를 남겨둔채 안해에게 어디로 간다는 말조차 없이 집을 나섰던 나였다.
인간의 참다운 삶과 존엄이 빛나는 위대한 품을 떠나 내 지금 어디에 와서 무엇을 하고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천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배은망덕한 자신이 끝없이 저주스러웠다.
그러던 지난 4월 나는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연설내용을 접하게 되였다.
설사 엄중한 과오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에게 99%의 나쁜점이 있고 단 1%의 좋은점, 량심이 있다면 그 량심을 귀중히 여겨야 하며 대담하게 믿고 포섭하여 재생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연설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꼭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았고 상처입은 자식, 병든 자식을 탓하지 않고 두팔 벌려 따뜻이 안아주는 다정한 어머니의 목소리같았다.
나의 심장은 우리 당의 품, 공화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일념으로 불탔고 마침내 지난 7월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좌담회참가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며 우리 조국은 불패의 강국으로 위용을 떨치고있다고 하면서 공화국의 품은 온 겨레가 안겨살 위대한 사랑의 품이라고 격정을 토로하였다.
장광철은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바침으로써 재생의 삶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충정다할 결의를 표명하였다.
박진근은 어머니조국은 반역의 길을 걸었던 자기를 탓할 대신 따뜻이 품에 안아 보살펴주고 죄많은 과거를 백지화해주었다고 하면서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온 나라 인민이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사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 우리 당의 인민사랑의 정치가 세상에서 제일이라는것이 북과 남의 두 제도에서 살아보면서 뼈에 새긴 진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가장 우월한 우리 공화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겠다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