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이 일어서면 온 나라가 일어선다
(평양 10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조건이 가장 불리한 창성군이 일어서면 온 나라가 일어선다,이것은 전후 창성땅을 온 나라 군들의 본보기로 정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의도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창성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은 한평생 장장 5만 5,000여리를 헤아린다.
지난날 현대문명과 담을 쌓고 궁벽한 산골에서 부대기나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추켜세우겠는가, 수령님께서는 늘 이 문제를 두고 마음쓰시며 멀고 먼 창성군을 찾고 또 찾으시였다.
그 과정에 산간지대에서는 군의 역할을 높이고 산을 리용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키며 농산과 축산을 옳게 결합시키면서 지방공업과 문화를 발전시킨다면 벌방지대나 도시 부럽지 않게 살아갈수 있다는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시였다.
농민들의 가정으로부터 당 및 정권기관, 경제부문 등에로 현지지도의 폭을 넓혀가시며 찬이슬 내리는 이른 새벽에도 비오는 궂은 날에도 7, 8월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이께서 자욱을 남기신 단위는 무려 연 700여개에 달한다.
농장에 가시여서는 풀먹는집짐승들의 방목문제, 먹이문제, 사양관리문제를 의논해주시고 지방산업공장에 가시면 원료보장으로부터 기계화의 방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깨우쳐주시였다.
주체44(1955)년 8월 또다시 창성군에 오신 수령님께서는 하루의 휴식도 없이 여러 리들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상점에 들리시여서는 매대에 놓인 산복숭아를 보시고 어떤 산과일이 많은지, 얼마나 딸수 있는가 알아보시였고 농민의 집에 가시여서는 마당에 널어놓은 도토리를 보시고 한말값이 얼마인지, 한해에 얼마나 주을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도 과중한 사업부담에 안타까와하는 일군들의 간청에 못이겨 수풍호에 나오신 수령님께서는 물우에 낚시대만 드리우시고 길 아닌 숲속을 헤치시며 산세 험한 산판에 오르시였다.
아득히 올려다보이는 벼랑턱우에까지 오르시여 굵직굵직한 도토리알이며 머루, 다래송이, 여러가지 풀잎들을 한아름 안고 내려오신 그이께서는 야속한 마음 달랠길 없어하는 일군들에게 벼랑턱밑에만 해도 산열매들과 집짐승먹이풀들이 이렇게 많더라고 몹시 기뻐하시였다.
모처럼 마련된 수령님의 그날의 휴식의 짧은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그이께서 창성인민들을 위해 바치신 크나큰 심혈과 로고에 의해 후날 창성은 골짜기마다 소, 양, 염소 등의 집짐승들이 욱실거리고 강냉이, 고구마, 고추 등으로 지대적특성에 맞는 작물배치가 이루어졌다.
군내 원료원천을 리용하는 식료공장, 직물공장, 종이공장 등 지방산업공장들이 튼튼한 물질기술적토대를 갖추고 훌륭히 일떠섰다.
창성은 말그대로 천지개벽되였다.
산은 산마다 보물산으로 되였으며 궁벽한 산골에 행복의 웃음소리,기쁨의 노래가 차넘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해동안 창성에서 이룩한 귀중한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시기 위하여 주체51(1962)년 8월 창성군에서 력사적인 지방당 및 경제일군창성련석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는 산간지대 인민들의 생활을 높이는데 있어서나 사회주의건설에서 지역적단위와 거점으로서의 군의 역할을 높이는데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오늘도 창성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그 업적을 가요 《창성은 살기 좋아라》, 《황금산타령》에 담아 노래부르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