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비단은 예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견직물이다.
이미 원시시대 말기와 고대시기에 베, 모시와 함께 질좋은 비단들이 많이 생산되였다.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을 비롯한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들에서 누에를 형상한 질그릇들이 발굴된것을 통하여 원시말기부터 비단이 생산되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삼국시기에는 조선의 비단짜는 기술이 일본에까지 전파되였다.
일본력사책인 《일본서기》에 4~5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조선의 비단짜는 기술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그 기술을 가르쳐줌으로써 일본에서 비단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된것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고려시기(918~1392)에 비단생산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그 종류도 훨씬 늘어났다.
질 또한 우수하여 멀리 중근동에까지 수출되였으며 세계에 《고려비단》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1392~1910)에는 물이 좋은 곳마다 비단생산기지들이 꾸려졌으며 뽕나무도 대대적으로 심었다.
비단생산으로 유명한 지방은 평안북도의 녕변, 평안남도의 성천, 함경남도의 금야, 정평, 고원, 북청, 단천, 함경북도의 길주, 명천, 강원도의 철원, 황해북도의 수안 등이다.
이름난 비단천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이름지어주신 《약산단》과 《구룡단》이 있다.
진달래꽃문양비단인 약산단은 녕변의 유명한 약산동대의 이름을 붙인것이며 구룡단은 천의 문양이 흐르는 강물처럼 은은하다고 하여 약산동대아래에 흐르는 구룡강의 이름을 딴것이다.
이 비단천들은 조선의 이름난 비단산지인 녕변견직공장에서 생산되고있다.
현대적인 기계설비로 장비된 공장에서는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의 명주실과 청진화학섬유공장의 인견실을 기본원료로 하여 약산단, 구룡단과 함께 다색단, 모본단, 양단, 법단, 공단 등 다양한 비단천을 짜고있다.
현재도 조선비단은 국내인민들은 물론 외국인들속에서도 호평이 대단하다.
평양의 만수대거리에 위치한 평양비단상점에서는 치마저고리뿐아니라 이불, 베개 등 비단으로 만든 제품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며 판매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