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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력사를 가진 조선의 말타기풍습
(평양 1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시 사동구역에 위치하고있는 미림지구에 승마구락부가 기념비적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다.

예로부터 조선민족은 말타기를 무척 즐겨하였으며 말을 타고 승부 겨루기를 자주 하여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다.

고대로부터 활쏘기, 칼쓰기와 함께 말타기기술을 부단히 갱신하였지만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생활화하고있던 고구려사람들에 의하여 그 기술은 크게 발전하였다.

약수리무덤벽화와 덕흥리무덤벽화를 비롯한 고구려무덤벽화들에는 말을 타고 질풍같이 내달리기도 하고 달리는 말우에서 창과 칼을 재치있게 휘두르거나 활로 목표물을 쏘아맞히는것을 겨루기도 하는 등 당대 사람들의 용맹스러운 모습들이 생동하게 형상되여있다.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에서도 말타기가 널리 진행되였는데 옛 기록들에 이 시기 사람들이 《사냥과 말타기로 락을 삼았다.》라고 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그후 말타기기술은 고려시기를 거쳐 조선봉건왕조시기로 계승되면서 더욱 발전풍부화되였다.

고려에서는 건국초기부터 용감하고 날랜 젊은이들을 골라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워주는것을 국가의 법으로 정하고 그들을 적에 대한 방어에 써먹도록 국가적조치를 취하군 하였다.

담력이 있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한 무사들로 구성된 신기군(귀신같은 기마술을 가진 부대), 마별초(기마특별부대)가 진행한 《마희》, 《희마》, 《롱마희》 등의 자료들이 《고려사》에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특히 기병들이 진행한 격구가 대인기였다. 여러명이 두패로 나뉘여 각기 마당가운데에 있는 공을 향해 일제히 말을 몰아 먼저 공을 차지한 사람이 상대방 공문우로 공을 채로 쳐내는 격구는 능숙한 말몰이기술과 완력, 재치있는 장치기기술이 요구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고려때 성행한 말타기가 국가적으로 장려되였다. 특히 이 시기 이채를 띤것은 마상재였다.

말우에서 거꾸로 서서 달리기, 말등우에 가로눕기, 말옆구리에 몸을 숨기고 달리기, 말등우에 뒤로 누워 달리기, 여러 마리의 말을 다루면서 말등을 넘나들기 등 마상재의 동작들은 매우 다양하였다.

마상재는 여러 나라들의 문화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일본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이것은 일본도서 《말》, 《일본마정사》들에 《에도시대에 조선의 사절단과 함께 온 조선의 마술사들이 곡마(마상재)를 연출하여 우리 나라의 마술계에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고 쓴것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이처럼 조선인민은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말타기풍습을 이어오면서 민족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과시하였으며 우수한 문화를 널리 전파시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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